요리사의 요리,
요리라는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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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민윤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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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차오른 오래된 이야기
주간지에 연재될 때 많은 사람들을 ‘울컥’하게 했다는, 박찬일의 에세이 『밥 먹다가, 울컥』의 주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부제로 붙어 있는 것처럼 “마침내 차오른” 오래된 이야기다. 이제는 없어진 음식과 식당을 소재로 삼은, 또 거기에 얽힌 인간의 정리(情理, 인정과 도리)에 대한 지난 이야기다.
박찬일의 아버지를 위시해서,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었거나 지금도 사회의 뒤안에서 살아가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가난하다. 그들은 서울 강북 사람들이거나 또는 어느 먼 지방의 1970~80년대 사람들이다. 가진 것 없는 그들은 가난한 음식을 또다른 가난한 이들과 나눠 먹고 같이 먹는다. 그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 시대에는 ‘인정과 도리’가 살아 있었기 때문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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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게티 알라 기레빠시
다른 하나는 주방에서의 노동에 관한 것이라 생각한다. 주방 노동은 엄청난 ‘노가다’다. 뜨거운 불과 물을 쉴새없이 다루며, 자르고 나르고 굽고 부치며 돌아가는 식당의 주방은 험한 곳이며 전쟁터다. 그래서 주방은 ‘군기’가 세고, 오랫동안 여러모로 남녀 차별적인 공간이기도 했다.
장시간 격한 육체노동에 시달리는 요리사들은 제대로 된 끼니를 때맞춰 먹기도 어렵다 한다. 이 책에서 가장 그런 상황을 재치 있게 잘 보여주는 꼭지는,「요리사를 위한 요리」 이탈리안 식당 요리사들이 만들어 먹는다는 스파게티 ‘알라 기레빠시’에 관한 글이다. ‘알라 기레빠시’는 요리사들이 쓰다 남은 자투리 재료로 대충 만드는데, 요리 이름은 박찬일이 지은 것이다. ‘알라alla’란 무슨무슨 식이란 뜻의 이탈리아식 메뉴 작명 관습이고 ‘기레빠시’란 자르고 남은 자투리 재료를 뜻하는 일본어 ‘기레하시きれはし’에서 온 일종의 ‘노가다’ 용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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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레빠시 파스타는 위트 있지만, 요리사의 근무 상황을 풍자한다. Spaghetti Alla Kirepassi. 써놓고 보니, 아주 근사한 아랍풍의 건물에 들어 있는 시칠리아 식당의 메뉴 같다. 하기야, 그런 식당에서도 요리사들은 ‘빠시’로 만든 스파게티를 먹는다. 이건 틀림없다. 미슐랭 별 셋짜리 식당도 거기서 거기다. 절대로 거위 간 소스의 스테이크를 먹을 수는 없다.
― 박찬일, 『밥 먹다가, 울컥』, 웅진지식하우스, 2024. 116~11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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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요리와 주방 일을 나름 경험하고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모르지 않지만, 왠지 자주 잊어버린다. 특히 남이 하는 일일 때 그 노동의 결과물에만 눈과 입이 이끌리기 때문이겠다. 맛있고 예쁜, 그리고 편하게 먹는 음식일수록 더 많은 사람들의, 더 가혹한 노동에 의해 생산된 것이다.
둘 다 박찬일이 아니면 잘 요리하기 어려운 주제이며 그래서 그의 글과 생각은 귀하다. 뭐가 맛있는지, 누가 얼마나 (엽기적으로) 먹는지, 가성비가 어떤지, 이런 것만 주로 따지는, 그리하여 ‘Mukbang’ 같은 말을 세계 통용어로 만든 한국 음식 문화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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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뱅, 어향동고, 부야베스
요리하고 먹는다는 일의 사회적 성격을 잘 보여주는 또다른 책은 (나온 지 좀 됐지만) 충북 청주에 있는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을 운영하는 활동가 박영길의 『요리 활동』이다.
박영길은 자격증이 있는 요리사가 아니며, 그래서 식당 혹은 주방을 가진 ‘셰프’도 아니다. 그러나 그는 웬만한 요리사보다 더 열심히, ‘철학’을 갖고 요리해온 사람이다. 정육점과 식당을 운영한 부모의 아들로 자랐다는 그는 “어릴 때부터 요리하는 것이 익숙했”으며 “부모로부터 자기가 먹을 음식을 직접 해 먹어야 한다고 배우기도 했고 고등학교에 가면서부터는 오랫동안 혼자 자취생활을 하다보니 요리가 일상이 되었”다 한다.
하지만 그는 오늘날 “연예인처럼 동경의 대상이 된” 요리사들의 근사한 요리를 먹어본 적도 없고, “내가 아는 어느 식당에도 그런 근사한 요리사는 없다”고 한다. “아주 유명한 요리사가 운영하는 맛집을 갔다 해도” “그 식당 주방에서 실제 요리를 하는 사람은 근사한 요리사가 아니라 피곤에 절어 바삐 움직이는 주방 아주머니 혹은 소위 찬모다. 그이들이 음식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의 눈은 박찬일과 비슷한 ‘요리 노동’을 본다.
박영길이 이렇게 요리들과 레시피가 듬뿍 들어 있는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사람들과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을 만들어 활동하게 되어서이다. 같이 활동하는 노동자와 활동가들을 위해, 또 “다 함께 먹기 위해서” 요리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요리 철학은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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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요리가 즐거울까? 요리는 나에게 무엇일까? 요리한다는 것, 음식을 만들고 누군가와 함께 먹는다는 것은 매우 일상적인 일이다. 공룡을 처음 만들 때 우리들이 이야기한 세 가지 주요 원칙이 있다. 첫째 돈과 효율성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삶을 살고 활동을 해보자. 둘째 혼자 할 수 없는 일은 함께하자. 셋째 우리들의 활동과 삶이 일상생활에서 괴리되지 않도록 일상을 재구성해보자는 것이었다.
― 박영길, 『요리활동』, 포도밭출판사, 2016. 5~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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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반자본주의, 일상성, 공동체성’이라 요약될 모토를 내건 공동체에서 먹는 요리란 구체적으로 과연 뭘까? 어쩐지 재정이 그리 넉넉하지는 않을 것 같은, 활동가들의 공동체가 해 먹는 음식이란 그냥 단순소박한 것 아닐까? 내 선입견이었다. 그것은 돼지고기 두루치기, 굴국밥과 굴전, 짜장 같은 익숙한 음식에서부터 꼬꼬뱅, 어향동고, 유린기, 깐풍기, 부야베스 등에까지 이른다(부야베스라는 프랑스식 해물 요리를 아직 먹어본 적 없다).
박영길은 책에서 이 흔하거나(?) 특별한 날 먹는 음식에 얽힌 사연과 자기 레시피를 썼다. 그 사연이란 함께 먹고 살기 위해, 또 그것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과 얽힌 스토리들이다.
시민사회의 활동가들은 이 사회의 소금이다. 그들은 청춘과 온 삶을 던져 세상을 좋게 바꾸기 위해, 그리고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을 위해 싸운다. 그 사람들은 대개 정작 자기 몸이나 마음 건강을 잘 돌보지 않고, 자기들에게는 꼭 필요한 위로와 휴식을 잊는다. 그러니 먹는 일은 중요하다. 그런 그들이 건강하기 위하여. 그래서 『요리 활동』의 부제는 “어떤 싸움에서든 무너지지 않는 일상이 중요하니까”라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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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과 밥'
윤석열 탄핵 집회에 나가니, 여러 정당과 단체, 그리고 뜻있는 시민들이 보내준 푸드트럭들이 줄지어서 음식을 나눈다. 겨울 날씨가 매서우니 컵라면과 어묵, 또 따듯한 차가 좋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노동자들과 ‘자카르타 촛불행동 및 민주시민 일동’ 버스는 어묵꼬치를, 성균관대 민주동문회 봉사활동 모임인 에코성균과 율풍회는 쌍화탕·호빵·보이차를 공급하는 푸드트럭을 몰고 나왔다. 이루 나열하기 어렵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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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 촛불행동 및 민주시민 일동’이 준비한 어묵꼬치 푸드트럭. 백소아 기자.(「“탄핵 어묵 먹고 가세요” 무너진 법치, 밥심으로 일으킨다」, 한겨레, 2025년 1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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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사람들을 위해 밥을 짓고 나누는 우리 전통은 오래됐다. 1980년 5월 광주로부터 이번 응원봉/촛불 집회의 ‘선결제’와 푸드트럭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투쟁 현장에서 싸우는 사람들을 위해 밥을 짓고 그것을 나누는 일을 천직처럼 생각하고 실천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중에는 노동자, 장애인, 빈민들을 찾아 이십 년 넘게 식사 지원을 한 유희 씨의 ‘십시일반 음식연대 밥묵차’도 있었다.
1988년 서울 청계천에서 공구 노점을 하던 젊은 유희 씨는, 폭력을 동원한 노점 단속에 맞서 싸우면서 빈민 운동에 발을 내디뎠다. 한국 장애인 운동사에서 중요한 계기점을 만들었던 장애인 노점상 최정환 씨가 분신·사망한 1995년부터 집회 현장에서부터 밥을 짓기 시작했다 한다.1) 교통사고 장애인 최정환(1958~1995) 씨는 노점에서 카세트테이프를 팔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구청 단속으로 몸을 다치고 스피커와 손수레를 빼앗겼다. 그는 1995년 3월 8일 서울 서초구청 앞마당에서 몸에 불을 붙였고 병원에 실려 가 운명했다.2) 최정환 씨는 죽어가며 “복수해달라”는 말을 남겼는데, 유희 씨는 직접 그 유언을 들었다 한다. 그래서 유희 씨는 투쟁 현장을 평생 못 떠났던 것인지 모르겠는데, 유희 씨가 택한 ‘복수’ 방법은 밥을 지어 장애인, 노점상, 노동자들을 배불리는 일이었다.
유희 씨는 투쟁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집밥을 해서 날라, 언론에 보도된 고공농성장 중 유희 씨가 직접 찾아가지 않은 현장이 없을 정도였다. 쌍용차, 콜트콜텍, 동양시멘트, 세종호텔 등 수없이 많은 비정규직․해고노동자 투쟁 현장, 사드 반대 투쟁을 하던 소성리, 영등포 쪽방촌 등등. “노동자, 빈민, 장애인, 참사 유가족 등 거리에서 싸우는 이들이라면 누구에게라도 밥의 온기를 전했다.”3) 그런데 그런 유희 씨가 작년 6월에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런 일과 『요리 활동』을 생각하고 읽다보면 매우 근본적이라 할 물음, 먹는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묻게 된다. ‘미식’을 위해 구글링을 하고 식당을 찾아다니며 줄을 서는 일도 좋다. 인간답고 나름 아름다운 일이다. ‘쯔양’이나 ‘잡솨’ 유튜브도 재밌다. 그런데 나는 박찬일과 박영길 같은 분들이 요리와 음식에 대한 유튜브를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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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투쟁 현장에서 밥으로 연대했던 유희 밥묵차 대표 별세… ‘밥은 하늘이다’ 실천」, 경향신문, 2024년 6월 19일.
2) 정창조․강혜민․최예륜․홍은전․김윤영․박희정․홍세미, 『유언을 만난 세계: 장애해방열사, 죽어서도 여기 머무는 자』, 비마이너(기획), 오월의봄, 2021.
3) 「투쟁 현장에서 밥으로 연대했던 유희 밥묵차 대표 별세… ‘밥은 하늘이다’ 실천」, 경향신문, 2024년 6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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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민윤슬
바닷가에서 자라 바다 생태계와 해양 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과 로망을 갖고 있지만, 오늘도 마지못해 서울에서 먹고 살고 있다. 더 공부하여 더 많은 포구를 돌아다니고 생선회를 비롯한 한국인의 어식 문화에 대한 책을 쓰는 것이 목표다. <책과 참치>에서 먹고 사는 이야기와 바다에 관한 책에 대해 쓰고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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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박영길 #요리활동 #유언을만난세계 #밥먹다가울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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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습후후,
시국의 호흡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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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메르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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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좀 쉬자
일상에서 가슴을 옥죄고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일들은 한둘이 아니다. 심한 경우 목숨을 위협할 정도이고, 심지어는 정말 죽음으로 내몰기도 한다. 그런데 숨쉬기에 대해선 잘 배우지 않는다. 너무 당연해서 그렇다. 하지만 그저 주어진 것처럼 보이는 호흡능력도 실은 익혀야 한다. 게다가 지금처럼 망가진 세상에서라면 제대로 숨 쉬는 법이 더 절실하다.
‘내란’은 그렇지 않아도 숨가쁘게 사는 우리의 숨통을 폭력적으로 차단했다. 그들은 우리 숨통을 거머쥐고 조였다 풀고, 푸는가 하면 ‘입틀막’하는 시간을 반복해왔다. 숨 쉬기 힘겨워 다리 힘이 풀릴 정도다. 들숨과 날숨이 탄식과 한숨으로 바뀌고 ‘경기’로 숨이 넘어갈 판이다. 이건 아니다.
그러나 내란 세력에 놀라 생긴 호흡곤란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 덕에 노동자들과 장애인과 여성과 농민과 LGBTQ+가 모욕과 억압의 역사 속에서 저마다 창안해온 호흡법을 거리에서 나누고 배울 수 있는 현장에 저마다 참여했기 때문이다. 내란 전 기간에 걸쳐 응원봉과 깃발의 호흡과 리듬을 배울 수 있었다. 새로운 노래를 익히는 것만큼 좋은 ‘호흡법 수업’이 또 없다. 거리는 서로의 호흡을 배우는 학교였다. 평등의 호흡기가 곳곳에 착근되는 것을 보았다. 입틀막으로부터의 해방, 압박에의 저항, 고립과 단절을 넘어가는 애씀들로 넘쳐나는 현장. 그 안에서 나는 몸과 마음이 새로운 숨으로 차올라 황홀하기까지 했다. 질식의 위협이 상존하는 세계에서 이런 경험이 너와 나를 지킬 수 있을지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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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힘에 의해 사람들이 움직일 때 호흡으로 내부르는 사고가 바로 노래다. (…) 우리에게 필요한 가사가 스스로 급격하게 자라날 때, 우리는 새로운 노래를 지닌다.(오르핀갈리크, 넷사일링마이우트[넷실리크 에스키모]의 한 원로)
― 팀 잉골드, 『라인스』, 김지혜 옮김, 포도밭출판사, 2024. 3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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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의 바다, 반란의 바다
바다는 숨 쉴 여지조차 주지 않는 역사적 고통을 기억하고 있다. 『웨이크―이름 없는 노예에서 반란의 주인공으로 다시 태어난 여자들』은 노예제의 역사에서 흑인 여성 반란과 그 기록들을 찾으려는 흑인-여성-페미니스트-역사학자 레베카 홀의 분투를 담은 그래픽 노블이다. 지배자들이 남긴 문서고를 통해 노예 반란의 역사를 추적하는 역사학자 레베카 홀은 이 책에서 노예제가 오래전에 종식되었음에도 여전히 자신이 그 “여파” 속에 살고 있음을 격정적으로 제시하는데, 흑백으로만 이루어진 휴고 마르티네스의 그림은 레베카의 진술을 더욱 극적으로 만든다. 노예제의 역사와 레베카 홀 할머니의 저항과 레베카 홀의 현재를 연결하는 그의 그림은, 마치 사진의 ‘음화’가 흑백을 반전시킨 이미지이듯이, 노예제 인류사를 흑인 ‘여성’ 반란의 역사로 재구성하는 데 섬세하게 일조한다.
레베카 홀에 따르면 노예선에서 반란은 틈날 때마다 일어났고, 통계적으로 흑인 여성이 많이 탄 노예선에서 더 많이 발생했다고 한다. 기존의 연구들은 그 이유를 ‘우연’으로 치부해왔지만, 레베카는 그것은 우연이 아니며 흑인 여성과 여성 일반을 바라보는 편견으로 인해 그들이 보이지 않았을 뿐이라고 비판한다. 노예선의 흑인 여성들과 아이들은 손목과 발목에 쇠사슬을 차지 않고 갑판 위에서 지내면서, 선장을 비롯한 승선원들의 유흥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저 유흥이란 노예제 역사 내내 지속된 성폭력을 기본값으로 한다. 백인들은 자신의 손이 쉽게 닿는 곳에 두기 위해 그들을 갑판 위에 올려둔 것뿐이다. 이들은 흑인 여성들이 (그리고 여성들이)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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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시스 폴린 검스의 『떠오르는 숨―해양 포유류의 흑인 페미니즘 수업』은 노예선에서 뛰어내린 흑인 여성들의 반란을 목격했을 해양 포유류를 상상하며 인종적, 젠더적 폭력에 대항하는 호흡법을 익히고자 하는 책이다. ‘식민사업의 뗄감’으로 전락해 멸종당하다시피 한 긴수염고래의 역사는 반란과 저항의 몸을 박탈당한 채 여전히 폭력 속에서 살아가는 흑인 여성들의 역사와 겹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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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고래는 세상을 만드는 존재입니다. 바다 밑바닥의 퇴적물을 먹고 사는 유일한 대형 고래로, 지구 밑바닥에 거대한 자국을 남기죠. 영양분을 파내어 생태계 전체에 공급합니다. 대서양 횡단 노예무역이 끝난 이후에는 대서양에서 사라졌고요.
(…) 아무도 대서양 횡단 노예무역의 시기와 대서양귀신고래의 멸종이 관련되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저처럼 노예제와 우리의 친족을 함께 떠올릴 수밖에 없는 이들이 있겠지요.
― 알렉시스 폴린 검스, 『떠오르는 숨』, 김보영 옮김, 접촉면, 2024. 16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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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인종주의와 자본주의의 폭력으로부터 질식당하지 않기 위한 실천들을 제안한다. “듣기, 숨쉬기, 기억하기, 연습하기, 협력하기, 취약해지기, 존재하기, 맹렬해지기, 갈등의 교훈, 경계 존중하기, 털 존중하기, 자본주의 끝내기, 거부하기, 항복하기, 깊이 들어가기, 검정으로 있기, 속도 늦추기, 휴식 등등”.
가령, 서로 다른 고래 ‘종’ 간에 이루어진, “큰돌고래 무리가 길을 잃은 고양이고래 한 마리를 입양”한 기록이 있다고 한다. 종족과 인종에 대한 혐오가 득세하는 사회적 분위기 안에서, 종간 차이에도 불구하고 저 ‘유색’을 사촌, 자매, 친구로 또 커뮤니티 내부로 받아들이는 것은 오랜 폭력에 대항한 방법이었다. 저자가 저 입양을 흑인 여성의 삶과 커뮤니티, 역사에 깃든 “놀이-사촌, 자매-친구라는 관계의 기술”이라고 명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돌고래로부터 배워야 할 호흡법이 한둘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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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흐르는 몸_57 돌고래 되기_11x6cm(돌고래), 14x10cm(돌고래되기)_종이에 연필_2024 |
김수환, 흐르는 몸_5 물결이 새겨진 돌인간_11x19cm_종이에 펜_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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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 되기
김수환 작가의 드로잉북 『흐르는 몸』(ODT, 2024)엔 <돌고래 되기>(11×6cm, 14×10cm, 종이에 연필, 2024)라는 작품이 들어 있다. 작품의 이미지는 어쩐지 앞서 언급한 흑인 여성 페미니스트의 두 저작과 긴밀하게 호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유는 명확지 않다. 다만, <돌고래 되기>에서 돌고래가 되고자 하는 존재에게 ‘지느러미’가 없어서일지 모른다. 즉, 돌고래가 지느러미뼈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세대의 실천으로 지느러미 근육을 만들어 바닷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돌고래가 되려는 저 존재 역시 더 깊이, 넓게 유영하기 위해선 ‘지느러미 근육’을 만들어야만 할 것이다. 적어도 내란이 종결되지 않은 시점에서라면 만들어야 할 근육은 뻔하다.
습습후후, ‘쇠질’로, ‘러닝’으로, 윗몸 일으키기로, 샤우팅으로, 시로, 노래로, 책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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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메르치
메르치는 멸치의 사투리다. 크기에 따라 다양하게 선별해 팔린다. 대멸, 중멸, 소멸 혹은 잔멸로도 불린다. 크기에 따라 달리 쓰이기 때문에 분별한 것이다. 예전에는 식당에 중멸과 고추장이 반찬으로 종종 나왔는데, 이런 반찬은 오래된 해안가 식당 말곤 찾기 어렵다. 멸치와 달리 쓰임새가 별로 없어서, 이 이름을 써도 되나 생각하지만, 무수히 많은 것 가운데 하나라는 의미로 이름을 빌리기로 했다. 빈자들의 ‘투쟁’과 ‘항쟁’의 역사에 관심이 많아 간간이 책 보고 공부하고 있다. 이들의 문화사를 쓰는 게 작은 목표이지만, 잘 안 될 거 같다는 마음과 싸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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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법 #내란 #흑인 여성 #노예제 #해양 포유류 #돌고래 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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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5년 4월 4일 금요일 오전 11:00
장소 :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이제서야 탄핵선고 앞에 도착했을 뿐입니다.
우리는 더 나아가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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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항해'는 어떠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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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우, 이용희, 이우창, 천정환
디자인 김다혜
발행 콘텐츠랩 책과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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