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서평 뉴스레터 <책과참치> 서평 공모
“당신의 서평을 싣겠습니다.” |
|
|
이쾌대, <책 보는 두 여인>, 캔버스에유채, 72.7×91cm, 연대미상. |
|
|
알고 있습니다. 방에서, 카페에서, 교실에서, 사무실에서, 도서관에서 당신이 책을 읽고 메모를 남겼다는 것을. SNS와 블로그에 써놓은 서평, 그것을 꺼냅시다. 당신은 책을 좋아하고, 늘 책에 관해 뭔가를 쓰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쓰지 않으면 아직 덜 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당신의 서평을 <책과참치>와 함께 공유하고, 원고료와 굿즈를 받으세요.
🔗 모집 기간: 2025년 4월 17일 ~ 6월 30일
🔗 응모 자격: 책을 좋아하고 서평을 쓰는 누구나
🔗 모집 부문
- 주제 서평 : 1)해양문화와 어식, 2)책(문화)에 관한 책 3)디지털 중독
- 자유 서평 : 각자 자유롭게 선택한 책 |
|
|
🔗 주제 서평 대상 도서
1) 해양문화와 어식(魚食)
주강현, 『명태 평전』, 바다위의정원, 2025.
김종성, 『김종성 교수의 우리 바다 우리 생물』, 베토, 2024.
김준, 『바닷마을 인문학』, 따비, 2020.
2) 책(문화)에 관한 책
백창민, 『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 한겨레, 2025.
김지원,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 유유, 2024.
리처드 오벤든, 『책을 불태우다』, 이재황 옮김, 책과함께, 2022.
3) 디지털 중독
제니 오델,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김하현 옮김, 필로우, 2021.
김지윤, 『아이들의 화면 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사이드웨이, 2024.
데이비드 색스, 『디지털이 할 수 없는 것들』, 문희경 옮김, 어크로스, 2023.
🔗 서평 작성 방법
- 분량: 200자 원고지 기준 20매 내외
- 워드 파일(hwp, ms-word)을 권장하며, 이메일에 직접 쓰기도 가능
- 응모작은 기존 매체에 발표되지 않은 창작물
- AI를 활용하거나 표절이 확인될 경우 선정 대상에서 제외
🔗 제출: booksnchamchi@gmail.com
- 메일 제목에 ‘책과참치 서평 응모’(공모분야[주제서평, 자유서평], 이름)라고 쓸 것
- 서평 관련 문의사항도 위 메일로 받습니다.
🔗 선정작 발표: 2025년 7월 (뉴스레터 <책과참치>에 발표하고 원고 게재)
- 선정작에 대해서는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하고 굿즈를 보내드립니다. |
|
|
내전이란 무엇인가
내전(內戰, civil war)이란 같은 국적의 시민들이 서로를 적으로 간주하여 치르는 전쟁을 뜻한다. 6.25전쟁이 영어권에서 종종 ‘한국 내전Korean Civil War’으로 명명됨에도 불구하고, 내전에 대한 한국 독서 시장의 관심은 매우 낮다. 서양사 도서(『스페인 내전』, 『러시아 내전』 그리고 마르크스의 걸작 팸플릿 『프랑스 내전』)나 극우 인사들의 저작 몇 권을 제외하고 나면 이 주제에 흥미를 가진 독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책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중 하나가 데이비드 아미티지의 『내전: 관념 속 역사Civil Wars: A History in Ideas』다. 미리 말해두자면 이 책에는 독자들이 흔히 기대할 법한 군사적 사건의 서술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내전』은 내전이라는 관념 자체, 혹은 내전 개념의 형성과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논변들의 역사에 초점을 맞춘다. |
|
|
서론에서 저자는 내전이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이론적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개념임을 지적하며, 서구 역사 전체를 아우르는 내전 관념의 역사를 살펴볼 것을 제안한다(달리 말해 아랍이나 일본·중국과 같은 비서구는 다뤄지지 않는다). 전체 3부로 구성된 본론의 제1부는 고대 로마 공화국 및 로마 제국에서 내전bellum civile 개념이 정립되는 과정을 재구성한다. 로마 공화국은 그라쿠스 형제의 (실패한) 농지 개혁에서 군벌들의 패권 다툼에 이르기까지 시민들 간의 무력 투쟁에 계속해서 시달렸으며, 이는 결국 공화국이 몰락하고 제국이 수립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 경험에서 로마인들은 ‘단일한 정치 공동체에 속한 시민권자들이, 정당한 통치권을 보유한 세력을 포함한 둘 이상의 세력으로 분열되어, 서로에 대한 대규모 군사 작전에 돌입하는 상황’으로서의 내전 개념을 정립했다(1장). 중요한 것은 로마인들이 내전이 어떠한 조건에서 무슨 메커니즘으로 발발하고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서술하는, 이후 근대까지 서구의 내전 이해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모델들을 구축했다는 사실이다(2장).
제2부는 긴 시간을 뛰어넘어 17~18세기로 향한다. 여기서 저자는 크게 두 가지 사항에 주목한다. 첫째, 18세기까지도 법철학·정치철학자들은 내전을 이해하고 분석하기 위해 고대 로마의 모델들에 기대곤 했다(3장). 둘째, 18세기 중후반, 특히 미국 독립전쟁·프랑스혁명을 경유하며 내전을 규정하는 언어는 점차 변모했다. 한편으로 좀더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 ‘혁명’의 관념이 등장하여 부정적인 함의를 간직한 ‘내전’과 한 쌍을 이루었으며, 다른 한편으로 스위스의 법학자 에메르 드 바텔처럼 국제법 체계하에서 내전을 통제하는 법적 절차를 구축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4장). 마지막 3부에서 저자는 19세기 미국 내전을 기점으로 국제법 및 전쟁법 체계 내에서 내전을 규정하고 그에 대한 국가들의 대응 절차를 설정하려는 노력, 즉 내전을 ‘문명화’하려는 흐름이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제기구를 통해 내전을 제어하려는 시도는 내전의 범위를 정확하게 판정하는 까다로운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아미티지는 내전의 개념을 명확히 규정하려는 현대인들의 시도가 놀랍게도 대체로 실패하고 있으며, 전쟁의 양상 자체가 다양해지면서 내전의 범주 역시도 계속해서 넓어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
|
|
제1세계 지식인들의 충격
비서구권 독자는 이러한 이야기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경향을 읽어낼 수 있다. 현대사의 서술에서 내전은 점차 (서)유럽과 미국 바깥의 지역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처럼 묘사된다는 사실이다. 스페인 내전을 포함해 파시즘과 공산주의, 민족주의자들의 투쟁이 범람했던 세계대전 시기의 유럽은 극도로 간략하게만 언급된다(유럽사의 소양을 갖춘 독자라면 과연 바이마르공화국 시기에 내전 관념에 대한 주목할 만한 논의가 부재했는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내전을 규정하고 통제하고자 했던 국제법학자들 및 사회과학자들만이 부각되면서, 아미티지의 서술에서는 내전이 마치 비서구 지역에서나 (혹은 ‘덜 유럽적인’ 동유럽에서) 횡행하는 비극이자 서구가 관찰하고 개입해야 하는 대상처럼 그려진다. 2000년대 이라크 전쟁의 전개를 보며 내전을 연구해야겠다고 결심했다는 저자 후기의 말은 그런 점에서 저자가 의도한 바 이상의 진심을 담고 있는 셈이다.
언제나 역사는 역사가를 배반한다. 아미티지의 책이 출간을 앞둔 2016년 말, 내전과 같은 ‘비문명적인’ 사건이 평화로운 제1세계에서 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자기인식은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분기점은 물론 2016년 11월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선거 승리였다. 이 사건이 미국의 미디어와 학계에 끼친 충격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막대한 것이었다. 트위터와 같은 SNS, 허핑턴포스트 등의 뉴미디어의 영향력이 확산되는 매체적 여건의 변화와 함께, 북미의 정치·사회 논쟁의 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거대한 규모의 인문사회학적 성찰로 범람했다. 트럼프 시대의 여러 ‘공적 지식인’들은 이제까지 주로 미국 바깥의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던 개념, 예컨대 포퓰리즘, 권위주의, 파시즘 등을 미국 자체의 위기와 몰락을 해명하는 도구로 본격적으로 동원하기 시작했다.1) 내전 및 그 전조가 되는 사회의 극단적인 분열 또한 마찬가지였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의 공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우리가 놓치는 민주주의 위기 신호』는 민주주의가 붕괴하는 여러 사례를 검토한 후, 오늘날의 미국 역시 그러한 위기에 맞닥뜨렸다고 경고한다. 책의 핵심은 어떻게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의 직위까지 획득할 수 있었는가를 해명하는 것이다. 저자들은 먼저 정당의 역할에 초점을 맞춘다. 트럼프와 같은 ‘잠재적 독재자’ ‘극단주의적 선동가’들은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관건은 주요 정당이 위험 인사들의 부상을 차단하는 ‘문지기’의 역할을 명확하게 수행하느냐다. 단기적인 대중적 인기를 끌어모으려는 유혹에 굴하는 대신 선동가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초당적인 배제가 이뤄진다면 정당들은 극단주의를 제어할 수 있다. 정당 내부의 비민주주의적인 성격이 역설적으로 국가 전체의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셈이다.
|
|
|
그렇다면 오늘날 미국의 정당들은 왜 극단주의 제어에 실패했는가? 책은 크게 두 가지 요인을 지적한다. 첫째, 제도적인 차원에서는 양대 정당의 대통령 후보 선출 방식이 당 지도부의 지명이 아닌 프라이머리(예비선거, 한국의 국민경선에 해당)로 변모하면서 정당의 여과 기능이 약화되었다(62~86쪽). 물론 프라이머리를 통한 ‘보다 민주적인’ 후보 선출 제도 자체는 1970년대부터 도입되었다. 결정적인 변화가 찾아온 때는 2010년대였다. 연방대법원 판결에 따라 선거 운동에서 외부 자금의 유입을 막기 어렵게 되었으며, SNS와 케이블뉴스 등 ‘대안 언론’이 발달하면서 후보들이 기존 주류 언론을 우회하여 대중과 접촉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요컨대 노골적으로 대중을 선동하는 외부 인사들이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하여 정당의 문지기들을 돌파할 수 있게 된 것이다(74쪽).
저자들이 좀더 심각하게 우려하는 요인은 정치 문화 자체의 변화다(5~7장). 헌법과 제도만으로는 민주주의의 몰락을 완전히 예방할 수 없으며, 민주주의의 정상적인 작동을 위해서는 정치 행위자들이 공유하는 비공식적·문화적 규범이 중요하다. 후자의 대표적인 예가 상호 관용 및 제도적 자제이다(133~143쪽). 이는 정치적 경쟁자들이 서로를 완전히 끝장내야 할 적이 아니라 방향은 다를지언정 마찬가지로 국익을 추구하는 이들로 여겨야 하며, 그렇기에 권력·권한을 행사할 때 단순히 합법의 여부만이 아니라 예의와 관습을 고려해야 함을 의미한다. 현대 미국 정치의 비극은 1990년대 이래 양당이 서로를 단순한 경쟁자가 아닌 제거해야 할 숙적으로 간주하게 되면서 이러한 문화적 규범이 사라졌다는 데 있다(7장). 이는 공화당의 정치인들이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 트럼프를 권력의 심장부에 들여놓았을 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 자체의 분열을 더욱 극단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2)
|
|
|
아노크라시, 권위주의, 민주주의
바버라 F. 월터의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아노크라시, 민주주의 국가의 위기』는 현대 미국의 상태를 규정하기 위해 내전의 개념을 명시적으로 사용한다. 저자는 1990년대부터 세계적으로 폭증한 내전을 연구하다가 어느 순간 바로 자신이 속한 사회, 즉 미국에서 내전의 징후가 뚜렷해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섬뜩한 고백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책의 전체 구조는 다음과 같이 재구성할 수 있다. 1장부터 5장은 세계 각지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내전 발발 가능성을 높이는 주요한 조건을 제시한다. 첫째, 내전의 위험성은 사회가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 혹은 그 반대 방향으로 이행하는 중간 구간, 즉 ‘아노크라시anocracy’ 단계일 때 가장 높아진다(32~33쪽). 둘째, 종족·종교·인종의 차이 자체보다는 ‘파벌주의’, 즉 다른 정체성을 배제하는 극단적이고 배타적인 선동 정치를 추구하는 흐름이 성장할 때가 위험하다. 셋째, ‘지위 격하’, 즉 기존의 유리한 지위가 상실되고 있다고 믿는 세력이 극단적인 군사적 행동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 넷째, 현 체제 내에서 상황이 개선되리라는 믿음이 배반되었을 때 사람들은 폭력적인 수단으로 이끌린다. 다섯째, 오늘날 SNS 플랫폼은 공포와 분노를 생산하는 자극적인 가짜뉴스의 유포에, 특히 극단주의와 음모론의 성장에 중요한 촉매로 기능한다.
분석의 시선이 현재의 미국을 향하면서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6장은 미국 사회의 정치적 분열이 심화되는 과정을 스케치하며 여러 내전 위기 지표에서 미국이 위험한 수준에 도달했음을 지적한다. 트럼프 정부와 공화당 정치인들은 스스로가 하나의 극단적인 파벌이 되어 민주주의 체제의 쇠퇴를 촉발하고 있다. 2017년 버지니아주의 샬러츠빌 폭동, 그리고 2021년 1월 6일 극단주의자들의 국회의사당 무력 습격은 미국이 공공연한 반란 혹은 내전의 경로로 미끄러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신호탄이었다. 미국에서 내전이 발발하는 광경을 상상하며 시작하는 7장은 오늘날 미국 각지에서 번성하고 있는 (주로 백인 남성들로 구성된) 무장 극단주의 조직·민병대를 소개하면서 내전과 인종 간 학살이 결코 머나먼 가능성이 아님을 지적한다. 마지막 8장은 내전으로의 길을 예방하기 위한 몇 가지 방책을 제안한다. 저자의 주 논지는 정부가 내전과 테러의 현실적인 위험성을 인정하고, 이를 차단하기 위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
|
|
내전이라는 조명을 지금껏 관객석에 앉아 있던 미국인들을 향해 돌린 것은 월터의 책만은 아니다. 작년 봄 개봉한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는 이미 수 개의 세력으로 분열되어 전면전을 치르고 있는 가상의 미국을 그린다. 이제까지 세계 각지의 분쟁지역을 취재해오다 고국의 내전을 기록하게 된 종군기자라는 주인공 리 스미스(커스틴 던스트 분)는 그 자체로 내전 개념의 방향성에 나타난 급격한 변화를 담아내고 있다(‘시빌 워’라는 원제를 음차한 제목으로 ‘내전’이라는 의미를 덮어버린 한국 배급사의 선택 역시 한번쯤 음미해볼 만하다). 2024년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암살 시도를 이겨내고―압승하면서 미국 내전의 가능성은 역설적인 방식으로 가라앉은 듯 보인다. 그러나 제2기 트럼프 정권이 매일 내놓고 있는 경악스러운 정책들과, 그 추종자들이 공공연하게 트럼프의 3선 가능성을 공언하는 광경을 볼 때 미국의 위기는 종식이라기보다는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고 보는 편이 더 현실적일 것이다.
|
|
|
내전의 가능성은 종식되었나
미국의 예측할 수 없는 명운을 뒤로하고, 객석에 앉아 있던 또다른 관람자, 즉 한국에 잠시 조명을 비추어보자.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시작된 헌정 위기는 지난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인용과 함께 가까스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윤석열의 지위 상실과 쿠데타 주역들의 체포가 곧 모든 사태의 마무리를 의미하는가? 지난 넉 달간 우리는 여당 지지층을 중심으로 전체 유권자의 삼분의 일에 가까운 사람들이 초법적인 체제 전복 시도를 옹호하고, 폭력 행사에 거리낌이 없는 극우세력이 법원을 습격하며,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공공연히 헌법재판관들을 협박하는 광경을 목도했다. 누군가는 탄핵 선고 후에 예상보다 현저히 미미한 소요만이 발생했음을 근거로 내란은 종결되었다고 반론할지 모른다.
두 가지 사실만 지적하고 싶다. 첫째, 지난 4개월은 극우파 집단들이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자신들에 동조하는 인원의 규모가 기대 이상의 크기임을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렇게 형성된 네트워크가 해체되었다는 사실은 아직 확인된 바 없다. 둘째, 지금도 극우 텔레그램 채널에서는 헌법재판소의 평결에 대한 음모론적 해석은 물론, ‘보수가 패배한 것은 합법의 틀 안에서만 행동했기 때문이며, 이제는 그 선을 넘어야만 한다’는 식의 메시지가 공공연히 유통되고 있다. 간단히 말해, 한국은 지금 정치적 반대파를 제거 대상으로 간주하고 이를 위해 초법적인 행동까지 불사해야 한다고 믿는 작지 않은 규모의 파벌이 탄생하는 사태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란의 종식이 곧 내전 위기의 해소는 아니며, 우리 역시 내전이라는 주제를 똑바로 마주 볼 필요가 있다―미국인들이 조금 늦게 그렇게 하고 있듯이 말이다.
|
|
|
1) 이중 포퓰리즘에 집중한 저작으로는 나의 2017년 서평(https://begray.tistory.com/449)에서 소개한 관련 저작들 및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을 보라(샌델의 저작에 대한 나의 코멘트는 https://begray.tistory.com/536을 참조). 국역된 저작 중 권위주의 체제·파시즘을 전면에 내세운 평론의 예로는 티머시 스나이더의 『폭정: 20세기의 스무 가지 교훈』(조행복 옮김, 열린책들, 2017), 제이슨 스탠리, 『우리와 그들의 정치: 파시즘은 어떻게 작동하는가』(김정훈 옮김, 솔출판사, 2022) 등이 있다. 함축적인 서술이 많으며 번역에 아쉬움이 있지만 데이비드 런시먼의 『쿠데타, 대재앙, 정보권력: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새로운 신호들』 (최이현 옮김, 아날로그, 2020)도 참조.
2) 저자들의 후속작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박세연 옮김, 어크로스, 2024)는 유사한 논의를 공유하되, (민주당을 지지하는) 다수 국민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는 제도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나아간다.
|
|
|
필자 이우창
서구 근대와 현대 한국을 지성사 및 젠더사의 관점으로 탐구한다. 책과참치 기획위원 중 가장 먹물스러운 관점을 고수하는 소수파의 역할을 맡기로 했다. 딱 봐도 재미없고 부담스러워 보이는 주제를 잡아 흥미로운 글을 제조하는 목표를 갖고 있다.
|
|
|
#내전 #내란 #민주주의 #극우 #분열 #양극화 #트럼피즘 |
|
|
2024년 12월 3일 밤 이후로 종종 두 가지 유형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다. 정치의 지겨움을 토로하는 소위 ‘중립주의자’들, 그리고 어쩌면 계엄 실행의 시점과 깊이 연루돼 있는 듯한 명태균씨 같은 ‘빅마우스’들.
먼저 ‘빅마우스’ 유형의 사람들. 이 유형의 사람들은 자신과 타인의 ‘사회적 촌수’에 지대한 관심이 있다. 그래서 그들의 관심의 촉수가 더듬는 것은 타인의 고향, 출신 학교(세대에 따라 고등학교), 직장과 지위 등이다. 그리고 어느 접점에서건 자신과 상대방을 매개할 ‘유력 인맥’을 감지하면 이내 그들은 저 사회적 촌수에 위계를 얹는다. “느그 서장 남천동 살제?” |
|
|
현 대구시장이 “경남 지방에서 놀던 여론조작 브로커”1)라고 평한 명씨를 언론에서 접할 때마다, 나는 또다른 경남 인사 한 분을 떠올리곤 한다. 김현지 MBC경남 PD와 김주완 전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이 2023년 벽두 다큐멘터리와 책으로 공표하며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어른 김장하’. 1973년부터 진주에서 남성당 한약방을 50여 년간 운영하면서 그 수익금으로 줄잡아 천여 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형평운동衡平運動2)과 여성운동 등을 후원한 김장하 선생은 “절대 자신을 알리는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3) |
|
|
출처: https://youtu.be/pvKC0EYU7wo?si=bGCBvAd_f3Ff_Efq
베풀었다는 생각조차 마음에 남기지 않는다는 저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의 실천과 저 허장성세의 말의 대조. 한쪽이 자신의 행동을 침묵으로 드러나지 않게 한다면, 다른 쪽은 다변으로 자신의 행동을 속인다. 나는 이 차이에 관심이 간다. 물론 그 차이는 인간의 역사만큼 오래된 대조적 인간성의 발로일지도 모른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도 부끄럽지 않으려고, 더는 부끄럽고 싶지 않아서 조용히 행동하는 이들은 있고, 부끄러움을 가리려고, 부끄러움을 부정하려고 말을 앞세우고 뱉은 말을 배반하는 이들4)은 있으니까. 그러나 나는 부끄러움과 침묵의 도덕심리학보다 부끄러움과 침묵의 역사사회학에 더 관심이 있다.
|
|
|
“칠십 년 동안 나름대로 부끄럽게 살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아직도 부끄러운 것이 더 많습니다. 앞으로는 부끄럽지 않게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5)
“내가 배우지 못했던 원인이 오직 가난이었다면, 그 억울함을 다른 나의 후배들이 가져서는 안 되겠다 하는 것이고, 한약업에 종사하면서 내가 돈을 번다면 그것은 세상의 병든 이들, 곧 누구보다도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거둔 이윤이겠기에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6)
―김장하
|
“이틀 뒤인 24일, 남태령 대첩에 참가했던 15명의 여성과 퀴어를 인터뷰했다. (…) 상당수 여성들이 남태령행을 두고 ‘죄책감’ ‘부끄러움’을 언급했다.”7)
“당신의 편지를 읽고 깊은 존경심을 느꼈습니다. [1980년 광주에서 당신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씀하셨지만, (…) 저는 당신의 편지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힘을 보태려는 의지, 죽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 타인을 구하러 간 용기를 읽었습니다. (…) 그 용기를 마주할 때 저는 사실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남태령의 새벽에 맨몸으로 경찰차를 막으러 가면서도, 제 발걸음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저는 기억하거든요.”8)
―계엄 이후 남태령 |
|
|
침묵의 역동
여기 부끄럽지 않으려고 선택을 했고, 그 선택으로 인해 결국 나치 전쟁 범죄의 가장 확실한 증거로 남은 폴란드 마이다네크 절멸수용소에서 사망에 이른 한 젊은이가 있다. 다니엘 트로크메. 그는 제2차세계대전 당시 수백에서 수천 명의 난민 아이들의 목숨을 구한 프랑스 남부 비바레리뇽 고원 마을의 위험천만한 구조 활동에 참여하면서 “절박하게 도움이 필요”(50쪽)한 아이들과 사랑에 빠졌고 그 아이들을 마지막까지 돌보기 위해 독일군에게 체포되기를 ‘선택’했다. 인류학자 매기 팩슨의 저서 『비바레리뇽 고원』은 “안락한 국가와 계급, 직업의 바깥으로 나돌”(45쪽)며 스스로와 기독교와 서구 문명에 대해 질문하던 한 귀족 청년이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기 위”(52쪽)해 내린 저 선택의 여정을 추적하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저자 자신이 (책의 마지막 문장처럼) “더 높은 곳으로”(517쪽) 고양돼가는 과정을 일기처럼 기록하고 있다. |
|
|
*1943년. 2차대전 당시 르샹봉에서 보호받은 아이들과 다니엘 트로크메(맨 뒤 맨 오른편), 그리고 그에게 도움을 요청한 다니엘의 사촌 앙드레 트로크메(맨 뒤 중앙).
출처: https://collections.ushmm.org/search/catalog/pa16312
저자 매기 팩슨은 애초에 비바레리뇽 고원 사람들이 나치 치하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전복적인 비합리적 선택”(76쪽)을 내린 연유를 이해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인류학자로서 이 “대단히 아름다운 비논리적 사례”(76쪽)를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저 사례는 이미 과거지사이고 다니엘 트로크메를 비롯해 저자의 질문에 답해줄 사람들은 대개 이 세상에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저자에게 곤란한 일은 ‘그 일’에 대해 증언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침묵’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영웅이 아니에요. (…) 그냥 자연스럽게 행동했을 뿐이에요.”(99~100쪽) |
|
|
그러나 현장 연구를 위해 고원의 마을을 방문했을 때, 저자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수백 년간 주기적으로 이방인들을 보호해”온(153쪽) 고원은 ‘망명 신청자 환영 센터’를 중심으로 ‘지금도’ 난민들을 돕고 있었던 것이다. 흥미로운 평행선. 과거의 구조 활동과 오늘의 구조 활동, 그리고 구조 활동을 돕기 위해 마을의 초대를 받아들인 다니엘 트로크메와 그 구조 활동을 이해하기 위해 현장을 찾은 인류학자. 『비바레리뇽 고원』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 평행선이 마침내 하나로 합쳐지는 듯한 순간에 다다르기까지 느리고, 구불구불하게 진행된다.
『비바레리뇽 고원』은 다니엘 트로크메의 부끄러움과 선택의 연유에 대해 ‘설득력 있는’ 대답을 내놓지는 않는다. 여기서 ‘설득력’이란 말을 오해하진 말자. 저자는 우리가 어떤 논증을 통해 다니엘 트로크메나 고원 사람들의 선택에 설득당할 수 있고, 그로써 우리 역시 그와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되리라 생각하지는 않는 듯하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학술적 논증으로 채우지 않았다. 저자가 ‘보여주는 것’은 자신이 사회과학자의 정체성을 내려놓고 고원 사람들의 “침묵의 법칙”(179쪽)을 따라 그들의 말을 좇기보단 그들의 행동을 “습관”(66쪽)처럼 함께하게 됐을 때 “마법”처럼(180쪽) 도래하는 깨달음의 순간들이다. 어쩌면 고원에 도착한 다니엘 트로크메도 그랬을지 모른다. “어쩌면 나는 더 이상 인류학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무 상관없을지도 모른다.”(303쪽)
놀랍게도 저자가 고원의 침묵의 법칙을 따르기 시작했을 때, 고원의 과거와 관계된 사람들의 증언이 드문드문 들려온다. 그러나 그 말은 ‘대단하지 않다’. “서로 사랑하라.”(88쪽)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482쪽) “믿음을 가져야 해요. (…) 결국에는 올바른 일이 벌어지리라는 믿음이 필요해요. 상황이 마땅하게 흘러가리라는 믿음이요.”(275쪽)
이 얘기들이 대단치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말’이기 때문이다. 고원 사람들이 도드라진 지점은 저 말을 행동으로 옮겼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모가, 조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당연한 것을 실천했을 ‘뿐’이다. 통상 우리는 당연한 것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 우리는 당연한 것에 대해 질문받을 때 대단한 대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해서 다를 바는 없을 것이다. 사랑에 빠진 우리는 사랑을 뽐내지 않는다. 사랑에서 비롯한 행동을 설명할 말이 우리에겐 사랑 이외에 딱히 없다. 외려 누군가 사랑을 떠벌린다면, 무언가 잘못된 게 있다는 뜻이다. |
|
|
그리고 남은 개소리
그러고 보니 서두에 언급한 한 가지 유형의 사람들을 빠뜨릴 뻔했다.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은 계엄과 계엄 해제 이후 이 모든 상황이 지겹다고 토로했다. 이 ‘중립주의자’들은 이쪽도 잘못했지만, 저쪽도 잘못했다고 했다. 빨간색이나 파란색이나 다 싫다고 했다. 정치가 지겹다고 했다.
이해한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을 멀리하고 싶은 바람은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그러니 나는 이런 분들도 『비바레리뇽 고원』을 읽어보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심란한 것들을 멀리하고 잠시나마 이 책에서 아름다움과 선함의 실례를 경험하시기를,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비결’까지 찾아보시기를 바란다. 여기 고통과 비통에 지친 이가 “나는 사회과학자다. 이제 더 이상 전쟁을 연구하고 싶지 않다”(36쪽)고 고백하며, “아름다움이 짓밟히는 위험한 세상에서 선한 사람이 되는 방법”(482쪽)을 알고 실제 그렇게 행동한 집단을 묘사하고 있으니까.
아, 물론, 이런 '중립주의자'들 상당수의 발화 의도가 다른 데 있다는 것을 내 모르는 바는 아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2016년 미 대선 시절에 재조명된 철학자 해리 G. 프랭크퍼트의 촌평으로 갈음하도록 하자. |
|
|
개소리쟁이는 (…) 진리의 편도 아니고 거짓의 편도 아니다. (…) 자신이 하는 개소리를 들키지 않고 잘 헤쳐나가는 데 있어 사실들이 그의 이익과 관계되지 않는 한, 그는 자신이 말하는 내용들이 현실을 올바르게 묘사하든 그렇지 않든 신경쓰지 않는다. 그는 그저 자기 목적에 맞도록 그 소재들을 선택하거나 가공해낼 뿐이다.
―해리 G. 프랭크퍼트, 『개소리에 대하여』, 이윤 옮김, 필로소픽, 2023, 58~59쪽. |
|
|
1) https://youtu.be/CSzil-P5GAo?t=213
2) 1923년부터 일어난 백정들의 신분 차별 철폐 운동으로, 저울처럼 공평한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기치를 내걸었다. 김재영, 「형평운동과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 진주의 김장하」, 『서남저널』 2023년 4월 3일.
https://www.snj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3722
3) 김현지, 「[MBC경남 <어른 김장하> 제작기] 부족한 점 메워주는 기자와 PD의 협업, 시대의 허기를 채우는 이야기를 탄생시키다」, 『신문과 방송』 638호(2024년 2월호), 50~53쪽.
4) 「“얼굴 두껍게 다녀라” 속뜻은… “1년 지나면 찍어준다”?」
https://youtu.be/ZJimYJB7AGU?si=ANwI2ZxWjiklsW78
5) 「[인터뷰] 보고 나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 드는 영화 〈어른 김장하〉 김현지 감독‧김주완 기자」, 『씨네 플레이』 2023년 11월 13일.
https://www.cinepl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930
6) 「50년 나눔 샘물 진주 남성당 한약방 폐업」, 경남도민일보 2022년 5월 29일.
https://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795318
7) 「‘남태령 대첩’ 참가자 15명이 그날 밤 겪은 ‘희한한’ 일」, 오마이뉴스 2024년 12월 27일.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3091708
8) 「[5·18 광주가 12·3 서울에게] 12·3 서울, 남태령에서 밤을 새운 전연수」, 경향신문 2025년 1월 7일.
https://www.khan.co.kr/article/202501070601001
|
|
|
필자 서민우
과학과 지식의 역사사회학, 철학을 공부한다. 그러나 침묵하는 것들, 침묵 당하는 것들, 알지 못하는 것들, 알지 못하게 되는 것들, 말할 수 없는 것들에 관심이 있고, 그런 주제와 관련된 책들을 책과참치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
|
|
#김장하 #명태균 #비바레리뇽 #침묵 #개소리 |
|
|
이번호 뉴스레터는 어떠셨나요? 구독자님의 의견은 레터 개선에 큰 도움이 됩니다. |
|
|
서평 뉴스레터 책과참치는 2주 후 목요일 아침에 또 찾아 뵙겠습니다.
'서평 뉴스레터 책과참치'를 만드는 사람들
기획/편집
김만석, 김성우, 김지원, 박영신,
서민우, 이용희, 이우창, 천정환
디자인 김다혜
발행 콘텐츠랩 책과참치
|
|
|
콘텐츠랩 책과참치
booksnchamchi@gmail.com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