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혼종성의 흔적: ‘아아’와 커피믹스
from. 서나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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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2025년 하반기를 상징하는 콘텐츠가 되었다. 훗날 2025년 문화사를 정리한다면, 이 작품은 당대의 ‘현상(phenomenon)’으로 꼽히게 될 것이다. 이 작품의 흥행 배경에는 여러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요인이 있겠지만, 꼭 성공의 이유를 밝히지 않더라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이 애니메이션 속에 현대 한국 문화의 특성이 집약되어 있다는 점이다.
현대 한국 문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혼종성(hybridity)’이다. 외래문화를 단순히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적 맥락 속에서 변형·재가공하여 새로운 형식으로 내놓는 방식이다. 케이팝(K-pop)은 그 대표적 사례다. 힙합, R&B, 록, EDM 등 다양한 장르가 한 곡 안에서 혼합되고, 여기에 한국적 무대 퍼포먼스와 팬덤 문화, 아이돌 시스템이 결합한다. 즉, 서구 음악의 요소를 흡수하면서도 한국적 맥락 속에서 새롭게 빚어낸 장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바로 이 케이팝의 혼종성을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 안에서 구현해낸 작품이다. 퍼포먼스 연출과 영화 내의 각종 상징은 물론 OST에서도 이런 특징이 잘 드러난다. 첫 곡인 〈How It’s Done〉은 블랙핑크를 떠올리게 하는 케이팝 스타일을 보여주지만, 마지막 곡 〈What It Sounds Like〉는 디즈니 뮤지컬 애니메이션을 연상케 한다. 케이팝의 언어와 애니메이션의 문법이 결합하면서, 이 작품은 2025년을 뒤흔든 새로운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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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 아메리카노와 ‘Eoljukah’
이런 혼종성은 K-컬처 콘텐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가 커피다. 2022년 기준 한국인의 1인당 커피 소비량은 405잔으로, 세계 평균(152잔)의 2.6배가 넘는다. 1) 소비량만 놓고 본다면 한국은 이미 ‘커피의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과 140여 년 전 고종 때 서양의 ‘양탕국’으로 들어온 커피는 어떻게 국민 음료가 되었을까? 그 경로를 따라가다 보면 한국인들이 다른 문화를 어떻게 수용하고 변형해왔는지가 드러난다.
1) 「[정책 인사이트] ‘커피 도시’ 경쟁에 나선 전국 지자체들」, 『조선일보』, 2024.7.13.
등단 시인이자 커피 아키비스트(archivist)인 진용선의 『커피, 이토록 역사적인 음료』(틈새책방, 2024)는 바로 이 과정을 추적한다. 1986년 커피와 인연을 맺은 그는 방대한 인스턴트커피 자료를 수집하고 메타데이터를 분석해 아카이브를 구축해왔다. 이 책은 그 작업의 결실이다.
커피는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니다. 한국이 커피를 받아들이고 즐기는 과정에는 당대의 생활사와 시대적 질곡이 배어 있다. 이 책이 커피를 ‘역사적인 음료’로 정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이 커피를 수용하는 방식이 오늘날 한국 문화의 특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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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피스, 파피스도 조커니와 잠 오지 안케하는 컵피에도 ‘아이스컵피’를 두 사람이 하나만 청하여다가는 두 남녀가 대가리를 부비대고 보리줄기로 쪽쪽 빠라먹는다. 사랑의 아이스컵피—이집에서 아이스컵피—저집에서 아이스컵피—그래도 모자라서 일인들 뻔으로 혀끗을 빳빳치펴서 ‘아다시! 아이스고히가, 다이스키, 다이스키요!(전 아이스커피가 좋아요, 좋아)’, ‘와시모네-?(나도 그래).”
— 석영(夕影), 「1930년 녀름」, 『조선일보』, 1930.7.16. 진용선, 『커피, 이토록 역사적인 음료』, 틈새책방, 2024, 129~130쪽에서 재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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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커피는 경성의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의 상징이었다. 전근대적 문화에서 벗어나 자유와 낭만을 만끽하던 젊은이들은 서구식 복장을 하고 다방에서 커피를 즐겼다. 그런데 그들이 “대가리를 부비대고”라는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 마신 것은 ‘에스프레소’가 아닌 ‘아이스커피’였다. 오늘날의 ‘얼죽아(얼어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문화는 결코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얼음을 넣어 커피를 즐기는 문화는 드문데, 한국인들은 겨울에도 차가운 음료를 끊지 않는다. 실제로 스타벅스 코리아는 2022년 판매된 음료의 76%가 아이스 음료였다고 밝혔다.2)
2) “Coffee so cold it's hot: Korea's love of iced Americano”, The Korea Times, 2023.2.11.
저자는 한국인의 아이스커피 사랑을 찬물을 즐겨 마시는 전통, ‘음식은 뜨겁게, 약재는 차갑게’ 달여 마시는 습속과 연결 지어 설명한다. 특히 한국인들은 뜨거운 것은 더 뜨겁게, 차가운 것은 더 차갑게 즐기는 온도 민감성을 보여준다. 뚝배기에 팔팔 끓여낸 찌개나 얼음이 떠 있는 시원한 동치미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이런 문화적 배경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한국만의 독특한 음료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해외 언론은 이 문화를 한국어 발음 그대로 ‘Eoljukah’로 표기하며 한국 문화의 특수성으로 주목하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이 책에서 한국인이 왜 이토록 차가운 음료를 선호하는지는 명확히 밝혀내지 못했지만, 커피가 들어오자마자 차갑게 즐겼다는 사실을 추적해낸 저자의 노력은 의미 있다. 그 과정 속에 한국인들의 문화 수용 방식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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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한국적인 발명품, 커피믹스의 탄생
커피는 시기마다 다른 계층과 맥락 속에서 받아들여졌다. 19세기 말 도입 초기에는 상류층만이 접할 수 있었고, 고종이 마셨다는 사실과 겹치며 ‘망국의 음료’라는 부정적 상징이 덧입혀지기도 했다. 20세기에 접어들며 소비 계층이 넓어지고, 수입·유통이 늘자 도시에 다방이 생겼다. 이곳에 당대의 트렌드에 민감한 문인과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커피는 ‘모던’한 취향의 상징이 된다.
커피는 대중화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이미지가 덧입혀졌다. 카페인의 효능을 둘러싼 논란도 있었지만 몸에 유익하다는 기사3)는 항간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여기에 전통적인 약재인 ‘인삼’과 섞은 ‘인삼 커피’가 등장하면서 커피는 건강과 연결되기도 했는데, 인삼 커피가 정력에 좋다는 인식이 더해지면서 거의 약처럼 소비되기도 했다. 이 인삼 커피는 조선을 찾은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인기여서 조선을 방문한 일본인들이 귀국할 때 잔뜩 챙겨가는 인기 상품이었다. 어쩌면 인삼 커피는 한국 최초의 커피 수출품이었을지도 모른다.
3) 진용선, 『커피, 이토록 역사적인 음료』, 틈새책방, 2024, 13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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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조선에 거주하는 미국인 선교사들도 커피를 사랑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미국인 선교사들의 잡지 <Korea Mission Field> 1923년판을 보면 “Bell Brand Coffee” 광고가 등장한다. 이 커피는 매주 로스팅을 하여 매우 좋은 향을 가졌다고 하는데 볼드체로 “We guarantee to use no Chicory”, 즉 치커리를 사용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가격은 1파운드(약 400그램)에 1엔이었다. 이를 통해 조선에서 치커리 뿌리를 섞은 가짜 커피가 유통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커피와 설탕 수입이 막히자 커피는 더 귀한 물건이 되었다. 당시 연합국에서도 물자가 부족해 치커리 뿌리를 볶아 커피 대용4)으로 마셨는데, 한국 역시 민들레 뿌리나 치커리를 이용해 대체 음료를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서구와 같은 커피 문화가 자리 잡기 전이었지만 커피를 향한 수요는 사라지지 않았다.
4) MKJO, 『세계대공황 레시피북』, 골든넛지, 2023, 217쪽.
한국전쟁 시기 커피는 생명줄이자 결핍의 상징이었다. 전쟁 중 미군의 전투식량인 C-레이션을 보급받은 군인들은 그 속에 들어있던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며 전투를 치렀다. 전투를 위해 카페인의 각성 효과가 필요했다. 휴전 이후 유통기한이 다 된 미군의 전투식량은 ‘나까마’(중개상)나 깡통시장을 통해 시장에 풀렸다. 궁핍 속에서 운 좋게 미군으로부터 흘러나온 C-레이션을 구해 커피를 접한 사람들은 처음 느껴 본 그 아찔한 쓴맛을 잊지 못했다고 회고한다.
1976년, 한국에는 인스턴트 커피에 프리마와 설탕을 더한 커피믹스가 등장한다. 전쟁기의 인스턴트 커피가 결핍의 맛이었다면, 산업화 시기의 커피믹스는 일터와 사무실의 필수품이 되었다. ‘빨리빨리’ 정신과 무엇이든 섞고 비비는 한국 문화가 결합해 탄생한 이 발명품은, 정신을 깨우고 칼로리를 보충하는 실용적인 음료로 자리 잡았다.
커피믹스는 생명을 구하기도 했다. 2022년 경북 봉화 광산 매몰 사고에서 두 광부가 커피믹스 30봉지로 버티다가 구조된 사건은, 한국전쟁기 수많은 군인들의 정신을 붙잡고 싸우게 만들어준 커피의 기억과 맞닿아 있다. 이번에는 미군의 C-레이션이 아니라, 한국인이 발명한 커피믹스가 생명을 구했다. 2017년 통계청 ‘한국을 빛낸 10대 발명품’에서 커피믹스가 5위에 오른 것은 이런 역사적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커피믹스는 외래문화의 한국적 수용 방식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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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에게 제사음식은 존경의 표현에 불과했다. 신들의 불멸성을 보장하는 데 인간은 필요 없었다. 하지만 인간은 정령들이 장수를 누리게 도왔고, 꿀과 젖, 취하게 만드는 음료가 죽은 자들을 적어도 무덤을 넘어 ‘살아있게 만들었는데’, 그들이 3~5세대 후에 지상에서 다시 누군가의 몸에 체화되어 환생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조상들에게 ‘손상된’ 형태로나마 잃어버린 불멸성을 보장했다.
— 클라우스 E. 뮐러, 『넥타르와 암브로시아』, 조경수 옮김, 안티쿠스, 2007, 6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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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스 E. 뮐러는 『넥타르와 암브로시아』에서 음료가 단순히 갈증을 해소하는 물질이 아니라 신과 인간, 삶과 죽음, 초월과 일상을 잇는 매개였음을 보여준다. 음료는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고, 의례와 의식을 완성하며, 치유와 불멸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서구에서 커피가 자리 잡아온 과정도 역시 역사적 맥락에서 보편성을 지닌다. 커피는 처음에는 각성제로서 종교적 수행에 쓰였고, 때로는 치유 음료로 여겨졌다. 근세 이후에는 대화와 교류의 음료가 되었으며, 근대 사회에서는 일상적 필수품으로 정착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커피가 걸어온 길은 다르다. 뮐러가 설명한 의미망에서 보면, 한국에서 커피의 역할은 전통적으로 ‘차(茶)’가 담당했다. 불교와 유교 전통 속에서 차는 심신을 닦고, 의례를 완성하며, 공동체적 질서를 체화하는 도구였다. 하지만 19세기 말에 들어온 커피는 특정 종교나 의례에 묶이지 않았다. 도시의 다방 커피, 전쟁기의 인스턴트 음료, 산업화 시대의 커피믹스, 오늘날의 ‘얼죽아’까지, 커피는 삶의 다양한 국면과 계층을 가로지르며 빠르게 퍼져나갔다.
한국인들은 서구의 커피 문화를 단순히 모방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스커피나 커피믹스처럼 세계 어디에도 없는 방식으로 변형하고 재창조했다. 불과 140년 만에 서구 사회에서 커피가 수용되는 모든 문화적 맥락을 압축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한국적인 문화와 감각을 덧입힌 것이다. 한국에서 커피는 사회생활을 지탱하는 연료(각성제)이자, 조용한 휴식의 동반자, 일터의 짧은 틈을 채워주는 음료, 대화와 소통의 매개체로써 수많은 이들의 일상적 기호품이 되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문화적 맥락을 동시에 흡수하고, 한국만의 문화를 ‘믹스’해서 즐기는 방식이야말로 한국 문화의 혼종적 특성이다.
이것은 오늘날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같은 콘텐츠에서 확인되는 한국적 혼종성의 뿌리를 잘 보여준다. 케이팝이 다양한 장르를 흡수해 한국적 스타일로 재탄생하고 다시 세계로 퍼져나가듯, 커피 또한 한국에서 독창적인 변용을 거쳐 새로운 의미를 획득했다. 즉, 커피는 K-컬처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한국식 혼종성의 상징적 전조였던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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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서나래
한국교원대학교 한국근대교육사연구센터 HK연구교수. 한미 교육원조, 한국 현대교육사를 공부하고 있으며,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시간이 나면 레시피북과 유튜브를 뒤져 새로운(!) 요리를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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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문화 #K컬처 #혼종성 #커피믹스 #진용선 #커피이토록역사적인음료 #넥타르와암브로시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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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신문> 1934. 10. 5. 브라질커피 광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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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화성의 소설 「신혼여행」은 <조선일보>에 1934년 11월 6일부터 18일까지 연재된 단편소설이다. 경성에서 결혼식을 올린 신혼부부가 신혼여행지로 떠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신혼여행 소설은 차별받는 민족의 현실을 남편의 ‘가르침’을 통해 ‘아내’가 깨닫게 되는 과정으로 서사화되어 있다. 이와 동시에 경성에서 강경을 거쳐 목포와 다도해에 이르는 여정으로 제시하고 있다. 지식인 남성에 의해 조선의 현실을 여성이 깨닫게 되는 계몽적 서사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목포 풍경의 일단을 그리고 있어서 매우 귀한 자료로도 읽을 수 있다. 카페 거리에 대한 묘사가 그렇다. <박화성문학관>이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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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길 좌우편에는 음식점이 거의 한 칸도 거르지 않고 먼 거리까지 죽—연해 있고 그 음식점마다 기름 머리를 치켜 빗고 분을 하얗게 뒤집어쓴 매소부들이 삼사 인씩 번들거리는 인조견 치마들을 질질 끌고 길거리에 나와 서서 콧노래를 부르며 몸을 흔들거리면서 그럴듯한 행인들에게 낚싯대를 걸고 있다.
“이것이 조선에서도 첫째로 칠만한 목포 공설시장이라오”하고 준호가 왼편에 보이는 큰 건물을 가리켰다. 그 맞은편 카페에서는 비속한 레코드의 소리가 흘러나오는 사이로 여급들의 일부러 웃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것이 카페아리랑.”
“아니, 목포에도 이런 큰 카페가 있어요?”
복주는 활짝 열어 제친 카페 정문으로 집안을 기웃 들여다보며 물었다.
“홍, 목포에 카페가 몇 개나 되는지 아오? 조선 카페가 큰 것으로만 네 개, 일본 카페가 아마 열 개쯤이나 될걸!”
“아니 술집이 이렇게도 많은데 카페는 웬 카페가 또 그렇게 많아요? 목포 사내들은 카페만 다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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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역사 깊고 [민족을 위해] 일만 했던 목포청년회관”이 허물어진 것을 회한에 차 바라보는 남편의 시야(이자 이에 동화된 아내의 시선)에 “매소부들”의 삶의 고통은 가시화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른 시기부터 ‘까페’는 커피를 마신다는 본래적 ‘기능’을 언제나 초과해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한편, 소설이 연재되던 무렵의 목포에는 오스트리아의 빈에 있는 “유야납 옷-토-에휴란 무역상회”가 목포상공회의소로 무역을 제안(<매일신보> 1935. 05. 30)하기도 한다. “짜스 밴드”(재즈밴드)에서 사용할 ‘목탁’을 비롯해 “통조림, 과물, 곡류, 야채, 어물, 원예용 종자”(<동아일보> 1935. 5. 29) 등을 대량으로 사겠으니, 브라질의 커피와 코코아를 직거래하자는 내용이었다. 이 거래가 이루어졌는지는 후속기사가 없어 알기 어렵다. 다만, 융성했던 목포의 카페 거리가 이제는 도시재생사업으로 힘겹게 지탱되고 있다는 사실만 확인하게 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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