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서 책의 몇 대목을 따라가며 저자 임블러가 자연과 삶을 어떻게 포개어 놓는지, 그것은 어떤 풍경을 새롭게 생성하는지 살핀다. 그 전에 한 가지 밝힐 것이 있다. 이 글에서 저자를 가리키기 위해 사용하는 ‘그’는 ‘they’의 번역어이다. 그는 소셜미디어 프로필을 통해 자신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they’를 사용해 달라고 요청한다.
금붕어와 자신 | 고백하자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도 금붕어가 작고 연약한 존재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금붕어는 ‘무한성장 생물’로 환경에 맞추어 죽을 때까지 자랄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파인애플만큼 무거운 성체도 있다. 몇 년 못 산다는 것도 철저한 오해. 길게는 20년까지도 살 수 있는데 몇 해 못 가 죽고 마는 주요 원인은 어항이라는 공간의 협소함에 있다. 금붕어는 암모니아를 다량 방출하는데 이것이 어항에서 희석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연못이나 강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일이다. 마지막으로 ‘금붕어 기억력 3초설’은 극악한 오해다. 어떤 금붕어는 미로를 빠져나가는 길을 무려 3개월이나 기억한다. 이러한 요인으로 인해 야생에 풀린 금붕어는 생태계 ‘교란종’이 된다.
고교 졸업 후 한참이 지난 시간. 저자는 고향집에 잠시 머무른다. 틴더 앱을 통해 고교 시절 함께 즉흥극을 공연한 친구가 트랜스젠더임을 알게 된다. 자주 마주치던 또 다른 친구 한 명을 만나 “고등학교 때 모습과는 전혀 달”라진 서로를 확인한다. “둘 다 딸이 되리라고 예상된 존재였지만 결국 다른 것이 되었”던 것이다.(30쪽) 새벽에 키스를 나눈 후 저자는 “믿을 수가 없어”라고 말한다. 자신도 친구도 알아보기 없을 만큼 변화했고, 그 변화가 마치 승리처럼 느껴진 것이다. 말 한마디 못 나누고 고교 시절을 보낸 그들이 ‘새로운 존재’가 되어 만나고 서로를 쓰다듬으며 무엇을 느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그들의 변화가 야생에 풀린 금붕어의 변화만큼이나 극적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그들의 서식지가 처음부터 드넓은 강이었다면 어땠을까? 얼마나 멋진 존재가 될 수 있었을까?
철갑상어와 할머니 | 약 2억 년 전에 지구상에 처음 등장한 철갑상어는 소행성 충돌로 공룡이 멸종했을 때도 꿋꿋이 살아남았다. 산맥의 울퉁불퉁함을 닮은 등딱지나 종유석 모양을 한 턱의 털은 유체역학적으로 미끈해 보이는 상어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원시적’인 풍모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뉴욕수족관에서 철갑상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저자는 자신의 할머니를 떠올린다. 할머니는 상하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까운 이들로부터 “예쁘지 않다”는 말을 듣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일본군 점령 하의 상하이를 떠나서 충칭으로 피난을 떠났다. 한 달 정도면 돌아오리라 여겼던 피난길은 반년으로 늘어났다. 양쯔강에는 시체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렀다. 깊어가는 노년, 중국어로만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손녀인 저자는 소통의 장벽에 종종 부딪혔다. 그가 보기에 할머니는 오래전 자신이 살아낸 기억 속으로 침잠하는 듯했다.
할머니와 철갑상어는 양쯔강에서 만난다. 할머니에게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양쯔강은 사실 철갑상어에게도 처절한 고난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살생제로 쓰이는 트리페닐틴 화합물(TPT)이나 수질오염에 더해 수많은 댐까지 건설되면서 철갑상어의 서식지는 대폭 줄어들었다. 양쯔강 최대 규모의 댐을 운영하는 중국장강삼협그룹은 매년 새끼 철갑상어들을 방류하지만 그들의 생존률은 미미하다.
수족관 안에 갇힌 철갑상어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오래전 중국으로 서서히 돌아가고 있는 할머니는 현재를 어떻게 감각할까? 뾰족한 답은 없다. 저자가 가만히 병치시킨 두 세계를 오가며 상어 같은 할머니, 할머니 같은 상어를 상상할 뿐이다. 쓸쓸하지만 신비롭고, 안타깝지만 도도히 흐르는 시간 앞에서 숙연해진다.
갑오징어와 퀴어-저자 | 약 5억 년 전 캄브리아 후기. 갑오징어는 딱딱한 외골격으로 포식자들에게 맞섰다. 1억 년이 훌쩍 지난 데본기 후기. 갑오징어를 공략하는 어류들이 출현한다. “껍데기를 비집어서 당신을 꺼내는 법, 당신의 껍데기를 반으로 쪼개는 법”(190쪽)을 익힌다. 더 이상 껍질이 자신을 보호해주리라는 보장이 없다. 어떻게든 ‘변신’을 꾀해야 한다. 서서히 껍질을 버린 갑오징어는 빠르고 유연해졌지만 보호막에 의지할 수 없었다. 뭔가 다른 무기를 ‘발명’해야 했다.
첫 번째 비법은 상대나 주변 환경에 따라 피부색 순식간에 바꾸기, 두 번째 비법은 먹물 분출이다. 전자는 단지 숨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자신을 도드라지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후자 또한 연막을 치는 것뿐 아니라 일종의 ‘가짜 형상’을 만들어 상대를 혼란에 빠뜨리기도 한다.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온’ 갑오징어는 이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드러낸다. 그 변신에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과 새로운 존재로의 변신이 수반하는 아름다움이 동시에 스며 있다.
저자는 어려서부터 ‘소녀다움’을 실천했다. 벌룬원피스와 웨지부츠, 긴 머리 등이 그 도구였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스스로를 아름답다고 느끼게 해주지 못했다. 도리어 친구들을 화장실로 끌고 가서 자신의 얼굴과 몸이 뭐가 문제인지 설명하곤 했던 것이다. 불만은 가시지 않았다. 팬데믹 기간. 거울을 보길 그만두었다. 세면대를 보며 세수를 했다. 아름다운 몸을 원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짧고 멋진 인간의 삶에서는 진화가 나를 위해 이상적 형태를 찾아 주도록 놓아둘 수백만 년이 없다.” 그리하여 “나는 스스로 변형을 시작해야 한다.”(193쪽)
기나긴 진화의 시간 동안 갑오징어가 스스로의 몸을 극적으로 변화시켰듯이 저자도 자신의 몸을 적극적으로 바꾸기 시작한다. 스타일리스트에게 유명 레즈비언의 사진을 보여주며 해당 스타일을 요구한다. 여드름을 없애기 위해 아큐테인을 복용하고, 남자들의 “아름답다”는 말에 반항하듯 머리를 밀어버리고 타투를 새긴다. 암흑 속에서 샤워를 하며 계속해서 변형되는 자신의 몸을 상상한다. 궁극의 아름다움은 성취되지 않는다. 하지만 끝없이 변신하는 자신을 긍정하기 시작한다.
살파와 퀴어-우리 | 어느 해 9월 리스 해변에 떠내려온 반짝이는 젤리들의 군집. ‘살파(Salp)’로 추정되는 이 무리는 몸통에서 물을 내보내 동력을 얻는 제트추진 방식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이들은 통일된 움직임을 보이진 않는다. 각 개체는 독립적인 생명체이고, 이들이 모여 군체를 이루는 구조다. 효율성을 따지면 일사불란한 운동이 좋겠지만 실제로는 조금씩 천천히, 그러면서도 모두 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마치 함께 하나의 목적지에 도착하겠다는 의지를 지닌 듯 말이다. 집단으로서의 위력을 뽐내기도 한다. 1975년 뉴잉글랜드 앞바다, 무려 10만 제곱킬로미터가 살파로 뒤덮였다. 하지만 살파의 아름다움과 괴팍함, 놀랄 만한 구조는 주목받지 못한다. 살파에 관한 역사적 기록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저자는 매년 6월 뉴욕에서 열리는 다이크(dyke) 행진에 참여한다. (각주에 따르면 dyke는 “남성적 특징을 가진 여성 레즈비언을 비하하는 멸칭”(172쪽)이었으나, 이후 레즈비언 일반을 가리키는, 연대의 의미를 담은 용어로 재전유된다.) 도착하는 시간은 제각각이지만 모두가 환영받는다. 힘찬 행진이지만 가장 느린 이의 속도에 맞추어 걷는다. 행진하는 사람과 구경하는 사람의 경계는 사라진다.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도 괜찮아”라는 팻말을 목격하기도 한다. 다이크는 다양성의 폭발이고, 저항의 난장이고, 한바탕 웃음이다.
리스 해변의 살파 군집과 뉴욕의 다이크 행진을 병치하면서 저자는 “혹시 우리의 모든 슬픔을─우리의 죽은 친족과 깨진 관계를, 삶이 불가능해 보이는 모든 순간을─하나로 잇는 것이, 그 모든 크고 작은 비통함을 하나로 잇는 것이, 혹시 그것이 기쁨이 되지 않겠느냐”던 시인 로스 게이(Ross Gay)의 목소리를 자신의 음성에 포개 말한다. 나는 해변을 가득 메운 살파를 상상하고, 다이크 행진의 사진을 찾아본다. 공식 웹사이트에서 “뉴욕 다이크 행진은 퍼레이드가 아니라 저항의 행진이다(The New York City Dyke March is a protest march, not a parade).”라는 문구와 만난다.2)
2) NYC Dyke March. (n.d.). NYC Dyke March [Website]. https://www.nycdykemarc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