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판에 비친 시대 전환, 인간의 다음 수
from. 임태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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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요, 완전히 붕괴되었어요
1938년 일본 도쿄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슈사이秀哉 명인의 마지막 대국이 열렸다. 장장 6개월에 걸쳐 진행된 이 대국은 ‘순수한 예도藝道로서의 바둑’과 ‘체계화된 경쟁 스포츠로서의 바둑’이라는 두 세계관의 격돌이기도 했다. 대국의 승부와는 무관하게 대세는 이미 결정된 상태였다. 1924년 일본기원日本棋院이 설립되고 프로기사 제도가 정착하면서 바둑은 스포츠가 되었기 때문이다.
슈사이 명인은 승패에 얽매이는 바둑을 천하게 여겼다. 새로운 시대의 바둑 대회에 적용되는 ‘제한 시간’ 제도 역시 혐오스러운 변화였다. 예술과 구도求道의 경지를 추구하는 바둑에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마지막 대국을 고전적인 방식으로 치를 수 있었던 것은 명예로운 일이었다.
도전자 기타니 미노루木谷實 7단은 1909년생으로 모던을 향한 열망으로 도시의 리듬과 속도가 달라졌던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냈고, 프로기사로 활약한 1930년대에는 기존 바둑 이론을 뒤흔드는 ‘신포석’ 운동을 주도했다. 기타니 7단의 기풍에선 속도가 중요했다. 슈사이 명인과는 여러모로 상극相剋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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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사이 명인의 마지막 대국은 한 수에 제한 시간 40시간이었다. 이 경기의 상대는 기타니 미노루 7단이었다. 1938년 당시 30세였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명인』에서 그의 이름을 오타케로 바꿔서 썼다. 기타니는 우리나라 바둑계와도 인연이 깊다. 조남철 9단, 김인 9단, 조치훈 9단, 하찬석 9단이 기타니 도장에서 수학했다. (사진 출처: 일본기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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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기의 관전 기자였던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는 명인의 장중한 패배 과정을 기록했다. 중일전쟁 이후 1938년 시기의 일본은 국가주의와 군국주의가 모든 문화 영역을 지배하기 시작했던 때였다. 국가 총력전을 지원할 동원 체제가 고조되던 1938년의 ‘속도’는 슈사이 명인뿐만 아니라 기타니 7단에게도 숨막히는 것이었다. 먼저 스러진 쪽은 슈사이 명인이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이 패배를 수백 년간 이어져온 전통과 미학의 세계가 스러지는 사건이었다고 평했다. 슈사이 명인과 같은 타입의 인간형이 더이상 이어질 수 없는 시대로 들어선 것이다.
그로부터 78년 후, 2016년 서울에서는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국이 열렸다. 1938년 슈사이 명인의 퇴장이 인류 전체의 현실로 소환되는 순간이었다. 프로기사 이세돌 9단은 알파고와의 대결 이후 “어린 시절 배웠던 예술 그 자체가 무너졌다”고 토로하며 은퇴를 선언했다. 자신이 믿어왔던 바둑의 세계관과 인간형에 대한 인식을 재고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에 부딪혔기 때문이었다. AI는 바둑 역사상 그 어떤 선수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수 계산에 빨랐고, 무엇보다 불안, 초조, 공포, 시기심 없이 오로지 이기는 것만을 순수하게 지향했다. 알파고 쇼크 이후로 바둑계는 격변을 겪었다. 인간 명인만의 독창적 기풍이 찬사받던 예전의 바둑계가 아니다. 기계의 수를 얼마나 정확히 모방하는지를 나타내는 ‘AI 일치율’이 가치 척도로 자리잡았다. 이것은 바둑계만의 일이 아니다. 새로운 문화와 속도를 체화한 세대가 어느새 시대의 주류로 자리잡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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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3월 이세돌 알파고 대국(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이 끝난 뒤, 한국기원에서는 승자 알파고에게 프로 명예 9단증을 수여했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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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Raymond Kurzweil은 앞선 두 시대의 당혹과 우울을 진화의 서막으로 해석한다. 그는 인공지능과의 관계가 경쟁이나 대체가 아닌 ‘융합’으로 귀결하리라 예측한다. 인공지능과의 융합은 인간 지능과 의식을 수백만 배 증대시켜 상상할 수 없는 단계로 확장할 수 있다. 그 단계에 이르면 ‘인간’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기준에서 정의될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 이르는 동안에 수없이 많은 이들의 생계와 일상이 절망에 내몰릴 것이다. 고소득 화이트칼라 직종 역시 예외가 아니다.
영화 <헤어질 결심>의 주인공 해준은 “나는요, 완전히 붕괴되었어요”라고 고백한다. 이 대사는 개인의 실존적 파국을 넘어, 새로운 시대의 질서 앞에서 자신의 세계가 소멸하는 것을 목도하는 ‘전문가’의 내면을 관통하는 말로 제법 어울린다.
첨단 기술이 촉발한 거대한 변화 앞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슈사이 명인의 패배는 ‘무엇이 더 중요한 가치인가’를 둘러싼 생각의 충돌에서 비롯되었다. 이세돌과 알파고 쇼크의 사례는 인공지능 앞에서 전문가의 권위가 무력해진 현실을 보여준다. 반면 커즈와일은 이런 패배를 진화론적 시간의 스케일에 맞대어 상대화해 볼 것을 권한다. 기술 변화의 속도는 날로 빨라지고 있으니 바둑판 앞에서 징징거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일침이다.
결국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하는 시대가 닥쳤다. 범용 기술로 진화하는 인공지능이 인간 전문가의 분석과 판단력을 압도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온갖 분야에서 ‘전문가’는 앞으로 무엇을 하는 사람으로 정의될까? 더 나아가 소위 ‘인간’은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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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처럼 움직인다는 것
알파고 쇼크 이후의 바둑인들에게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명인』(민음사, 2023; 원서는 1954)은 어떻게 읽힐까? 이 소설의 주인공 슈사이 명인에게 바둑은 평생에 걸쳐 연마하는 정신적, 미학적 수양의 길이었다. 한 판의 바둑은 하나의 예술 작품과 같다. 모든 수는 전체의 조화와 미적 완성도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 가와바타는 바둑판 앞에 앉은 슈사이 명인의 모습을 묘사하며, 주위를 압도하는 ‘무無’의 경지를 경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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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의 세계에 도전한 기타니 7단을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오타케大竹 7단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는 승리라는 단일 목표를 향해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길을 추구한다. 오타케에게 바둑은 미학적 완성을 위한 과정이 아니라, 논리적 계산을 통해 승리를 쟁취하는 지적 스포츠였다. 그는 명인이 평생 지켜온 예의나 품위 같은 불문율에 구애받지 않았다. 대국을 중단하고 다음 수를 봉인하는 과정封手에서 보인 오타케의 행동은 전통적 관점에서 보면 무례의 극치였다.
‘봉수封手’는 장시간 진행되는 바둑 대국을 중단할 때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용하는 특별 규칙을 지칭한다. 근대적 속도에 쫓기지 않았던 지난 시대의 예도가 시간을 풍부하게 사용하던 방법이기도 하다. 대국 시간이 정해진 한도를 넘겨 다음날로 이어질 경우, 마지막으로 수를 둘 차례인 기사는 자신의 다음 수를 결정한다. 결정한 수는 실제 바둑판에 두는 대신, 좌표를 기보棋譜 용지에 기입한다. 그 용지를 봉투에 넣어 밀봉하고, 양 대국자와 입회인이 봉투에 함께 서명한다. 봉인된 봉투는 주최 측이 안전하게 보관한다.
다음날 대국이 재개될 때, 모두가 보는 앞에서 봉투를 개봉하고 기록된 수를 바둑판 위에 놓음으로써 경기를 속행한다. 봉수 제도는 자기 차례인 기사가 휴식 시간 동안 더 유리한 수를 연구하거나, 상대방이 미리 다음 수를 보고 대응책을 구상하는 불공정한 상황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오타케 7단이 봉수한 수는 121수 흑黑이었는데, 좌상귀 일일一一의 점이었다. 전통적인 바둑 미학에서는 절대 택하지 않는 자리였다. 직관적인 이해를 위해 비유를 하자면, 귀한 손님을 모셔서 음식을 대접하면서 재래식 화장실에 장소를 정한 격이었다. 음식만 맛있다고 될 일이 아니지 않은가? 예가 없다. 오직 승리만을 목적으로 하는 실리의 수에 당혹한 슈사이 명인은 결국 5집 반 차이로 패배했다.
두 기사의 대립은 서로 다른 인간 철학의 충돌을 보여준다. 슈사이 명인이 조화와 품격, 과정의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예술가형 인간이라면, 오타케는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의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삼는 공학자형 인간에 가깝다. 오타케의 접근 방식은 훗날 알파고가 보여준 기계적 논리의 선구적 형태였다. 사실상 그는 인간 알고리즘처럼 움직였다.
슈사이 명인의 죽음과 함께, 바둑을 통해 구현되던 하나의 정신세계 전체가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났다.
장강명의 『먼저 온 미래』(은행나무, 2025)는 인공지능 쇼크가 전문 분야를 어떻게 뿌리부터 뒤흔들었는지 추적한 보고서다. 이 책에 따르면, 바둑계의 경험은 인류의 모든 전문 분야가 머지않아 겪게 될 파괴적 혁신의 예고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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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인간 전문가 집단을 대체하는 과정은 세 단계의 붕괴를 통해 진행된다. 첫번째 붕괴는 지식 체계의 붕괴다. 수천 년에 걸쳐 축적된 바둑의 정석과 이론은 알파고의 등장 이후 효용성을 잃었다. 인간 최고수들의 직관과 창의성은 오류 가능성이 높은 불완전한 판단으로 재평가되었다. 프로기사들은 자신들이 평생 쌓아온 지식의 탑을 스스로 허물고, 인공지능의 수를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처지가 되었다. 지식의 생산자에서 소비자로 전락한 것이다. 기존 지식의 해체는 전문가의 권위와 정체성의 위기로 직결되었다.
두번째 붕괴는 가치 체계의 전복이다. 과거 바둑계에서는 기사마다 고유한 스타일과 독창적인 수가 최고의 가치로 존중받았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가장 효율적인 수를 확률적으로 계산해 낸다. 그 결과, 인간의 독창성은 ‘AI 추천 수와 얼마나 일치하는가?’로 평가받는 새로운 기준에 자리를 내주었다. 전문가의 역할은 새로운 수를 창조하는 예술가에서,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신의 계시를 대중에게 해설하는 ‘번역가’로 바뀌었다.
세번째 붕괴는 의미 체계의 상실이다. 이세돌 9단의 은퇴는 이러한 붕괴의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는 은퇴의 변을 통해 바둑을 예술로 배웠으나, 그 예술 자체가 무너져버렸다고 고백했다. 자신이 평생을 바친 행위의 근본적인 의미가 사라진 데서 오는 실존적 고통의 표현이었다.
『먼저 온 미래』는 한 인간의 전문성이 그가 속한 시대의 가치 체계와 분리될 수 없음을, 그리고 시대의 변화는 때로 한 영역의 기반 전체를 폐기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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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바타가 한 시대의 죽음을 애도하고 장강명이 지연된 장례식을 기록했다면, 레이 커즈와일은 인류가 새로운 신이 될 것이라는 대담한 전망을 제시한다. 그의 『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비즈니스북스, 2025)는 앞선 이야기를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재구성한다. 커즈와일의 논의는 기술 발전이 직선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가속화된다는 ‘수확 가속의 법칙law of accelerating returns’에서 출발한다. 이 법칙에 따르면 인공지능이 인간 지능을 완벽히 넘어서는 지점인 ‘특이점Singularity’이 필연적으로 도래한다. 커즈와일은 이 시점을 2045년경으로 예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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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즈와일은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를 경쟁이나 대결의 구도로 보지 않는다. 그는 둘의 관계가 결국 융합fusion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재의 생물학적 인간을 ‘인류 1·0’으로 규정하고, 특이점 이후의 인간을 ‘인류 2·0’으로 명명한다. 이 변화는 인간성의 상실이나 기계에 의한 종속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자신의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으로 제시한다. 커즈와일은 “인간은 생물학을 초월하는 것이지, 인간성을 초월하는 게 아니다”라고 단언하며, 기계와의 결합을 통해 인간이 더욱 인간다워지고 창의적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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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8년생인 레이 커즈와일은 올해 77세다. 광학문자인식기, 음성인식기, 평판스캐너의 발명가이자 구글 엔지니어링 책임자로 일했다. 2024년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인공지능을 통해 돌아가신 아버지인 프레더릭 커즈와일의 존재를 복원하는 작업을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사진 출처 : T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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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관점에서는, 슈사이 명인과 이세돌 9단이 겪었던 가치 붕괴와 실존적 고통은 더 거대한 진화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성장통에 불과하다. 인공지능에 패배하고 자신의 지식을 폐기하는 프로기사들의 모습 역시 낡은 껍질을 벗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 과정일 테니, 오히려 반겨야 할 세태다. 인간 지능의 한계와 오류를 명확히 인식하는 과정은, 역설적으로 그 한계를 넘어설 가능성을 여는 첫걸음이 되기 때문이다.
커즈와일은 전작이었던 『특이점이 온다』(김영사, 2025; 원서는 2005)에 이어 이 책에서도 미래를 낙관적으로 그린다. 이 낙관주의가 『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의 장점이자 치명적인 단점이기도 하다. 인간의 뇌가 클라우드 기술과 연결되고, 인공지능과 융합됨으로써 현재의 계산 능력을 수백만, 수십억 배로 증대시킬 거라는 예측을 마냥 긍정하고 기대해야 할까? 커즈와일이 제시한 타임라인대로 미래가 전개된다면, 인간 지능과 의식은 현재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수준으로 확장될 것이다. 이 기술은 가와바타와 장강명이 관찰한 세계의 위치에서는 인간 고유의 영역을 잠식하는 위협이다. 하지만 커즈와일은 인간 잠재력을 열어젖히는 가장 강력한 도구라며 거듭 찬사를 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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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즈와일이 제시하는 기술 유토피아는 대중적인 매력이 있는 서사이긴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낙관론은 인간 가치와 정체성이라는 두 가지 핵심 질문을 비껴가지 못한다.
우선 가치의 문제다. 기계가 최적의 답을 제시하는 세계에서 인간적 노력과 독창성은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될까? ‘AI 일치율’로 측정될 수 없는 가치, 예컨대 비효율적인 탐색이나 아름다운 실패, 독창적인 질문 제시는 그 존재 이유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이것은 기계의 계산 능력을 넘어서는 새로운 가치 기준을 인간 스스로 창조해야 하는 과제와 연결된다.
정체성의 문제 역시 어렵고 까다롭다. 커즈와일이 예언한 융합의 시대는 인간 능력의 비약적 확장을 약속한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외부 지능과 내 생각이 결합할 때, 그 생각의 주체는 누구일까?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서는 대가로 우리는 고유한 자아의 통제권을 일부 양도해야 하는 걸까? 이 선택은 어떤 형태의 의식과 자아를 미래의 인간성으로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결단을 요구한다.
가치와 정체성에 대한 물음은, ‘전문가’의 미래라는 논의를 특정 직업군의 생존을 넘어 사회 전체의 존엄과 의미를 재설계하는 차원으로 나아가게 한다. 낡은 세계에 대한 애도를 넘어, 다가오는 세계의 주인이 되기 위한 난제에 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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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임태훈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근무하고 있다. 『우애의 미디올로지』(2012), 『검색되지 않을 자유』(2014)를 썼고, 『쓰레기 기억상실증』(2025)이라는 새로운 책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문학과 테크놀로지, SF 문화, 사운드스케이프 예술, 환경 인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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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바타야스나리 #장강명 #레이커즈와일 #알파고 #바둑 #인류2.0 #전문가의종말 #인간가치 #정체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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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서평 선정작 ②
도서관 수난사: 『책을 불태우다』를 읽고
from. 이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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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라는 상처, 도서관이라는 증언
『책을 불태우다』(책과함께, 2022)를 읽자니, 영화 <공자: 춘추전국시대>와 <책도둑>의 두 장면이 각각 떠올랐다. <공자-춘추전국시대>에서 공자와 그 제자 일행은 얼어붙은 강을 건너려다 얼음이 깨지는 바람에 그만 죽간을 싣던 수레를 강물에 빠트리고 만다. 종이가 발달하기 전 동아시아에선 대체로 대나무나 백양나무 등의 목재를 가늘게 쪼개어 가공한 뒤 그 위에 글을 쓰고 철하는 방식으로 책을 만들었다. 즉 죽간은 고대 동아시아의 책인 셈이다. 영화에서 공자의 수제자 안회는 차가운 물에 몸을 던져 죽간을 건져 올리다 목숨을 잃는다. 한편, <책도둑>에선 나치의 문화 정책으로 한 마을의 책이 온통 불태워지는 장면이 등장한다. 온통 재로 변한 책더미 속에서 어린 주인공 리젤은 아직 타지 않은 책 한 권을 품에 숨긴 채 집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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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공자-춘추전국시대》의 한 장면. 공자의 제자 안회가 언 강물에 뛰어들어 죽간을 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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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로서의 책은 이처럼 쉽게 훼손되고 사라질 수 있다. 극단적인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책이 얼마나 쉽게 변질되고 파손되는지를 잘 안다. 이렇듯 개인이 소장한 책의 관리도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닐진대, 그 수가 수십만에서 수백만 권을 웃도는 공공의 도서라면 사정은 더욱 복잡할 것이다. 저자 리처드 오벤든Richard Ovenden은 영국 옥스퍼드대학 보들리 도서관의 관장으로, 도서 보존의 중요성과 관리의 어려움을 도서관의 수난 역사를 통해 조명한다. 저자는 단순히 영국 도서관의 사례를 다루는 것을 넘어 세계 도서관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살펴본다. 이를테면 아슈르바니팔의 전설적인 대도서관이나 화재로 소실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시작하여 영국 수도원의 서고, 아르헨티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등의 국가도서관으로 시선을 옮기며 다양한 일화를 소개한다. 그 안에는 바이런과 카프카 같은 유명 작가의 원고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오벤든은 단순한 흥밋거리로 이 이야기들을 나열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왜 그토록 많은 책이 연기 속에 사라졌는지를 성찰하며, 우리가 왜 여전히 책을 보존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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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에서 보안으로
저자가 제시하는 도서 보존의 이유는 다소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으나 그것이 인류 보편의 발전과 평화를 위한 조건임은 분명하다. 책과 다양한 기록물을 보존함으로써 인류는 여러 계층에 필요한 교육을 보급할 수 있고, 지식의 다양성과 시민의 행복을 증진하며, 공정한 평가 기준을 마련하거나 각 사회의 문화‧역사적 정체성을 재현할 수 있다. 무엇보다 도서관과 기록관이 민주주의, 법치주의, 개방 사회를 뒷받침한 핵심적 인프라였다는 점에서 도서 보존의 필요성은 설득력을 얻는다(본문 11쪽, 351쪽).
주목할 것은 책과 기록물의 형태 및 전달 방식이 변화함에 따라 과거에는 보존이나 보관의 차원에서 논의되던 문제가 이제는 보안의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13장 「디지털 홍수」에서 저자가 지적하듯, 오늘날의 책은 코드나 영상이라는 다매체 기술의 활용 수준을 넘어, 그것이 갈무리되고 운용되는 시스템 자체의 문제, 나아가 그러한 시스템이 안고 있는 잠재적 위험성과 불확실성을 함께 고민하게 만든다.
최근 발생한 SK텔레콤의 유심칩 대란은 이 문제를 되짚게 하는 사례이다. 디지털 네트워크 안에 구축된 세계와 그 안에 담긴 정보들은 단순한 데이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것들을 ‘책’의 범주에 귀속할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이겠지만, 이들이 개인정보를 넘어 개인의 정체성과 서사를 구성하는 기록 이상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그러나 이번 사태와 그간의 유사 사례들은 정보에 대한 개인의 무지와 무관심, 그리고 기업의 안일한 사후 대응이 구조적 문제임을 드러낸다. 정보의 흐름과 축적이 곧 인간 삶의 지속을 가능케 하는 시대에 우리는 여전히 종이책의 소실에는 애도를 표하면서도 디지털 정보의 일상적 소멸에는 무감각하다. 그런 의미에서 오벤든의 논의는 디지털 시대의 기록 보존과 보존 방식에 대한 우리의 감각 부재를 향해 유의미한 경종을 울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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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서와 조박
책의 역자도 밝혔듯이, 도서관과 책의 수난사를 다룬 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레 떠오른 것은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다. 여기서 분서갱유에 대해 자세히 논할 필요는 없지만,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책이나 기록물의 보존이 늘 특정한 시대의 지식 위계화 속에서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지식은 언제나 배제와 수용의 저울 위에서 상이한 운명을 맞는다(이 점은 『책을 불태우다』가 소개하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도 재차 확인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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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책도둑》속 나치가 한 마을의 도서를 소각하는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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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시황제의 분서는 모든 책을 불태운 게 아니라 백성의 삶과 직접 관련이 없는 비실용적 문헌들, 이를테면 유가 경전이랄지 제자백가의 문헌들만을 대상으로 한 선별적 도서 폐기 사건이다. 그런데 한漢나라의 건국 이후, 사라졌던 책들이 다시 수집되고 정리되면서 상황은 반전을 맞이한다. 시황제 당시 주로 배척되었던 유가의 문헌들은 복권된 반면, 일상의 삶에 필요한 기술이나 지식과 관련한 문헌들은 상대적으로 밀려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지식의 위계화는 이후 중국의 전통 시기 내내 지속되면서 특정 문헌만을 숭상하고 그 외의 책들을 등한시하는 독서 편향을 유발하게 된다(중국의 전통 시기 독서 편향에 대해서는 李零, 『簡帛古書與學術源流』(2007, 개정판), 生活·讀書·新知三聯書店, 7쪽 참고). 그리고 이러한 독서 편향이 지식의 편향과 고립을 유발하여 동아시아 발전에 있어 일정 부분 저해 요소로 작용했음도 주지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도서와 기록물의 단순한 보존 여부보다, 그 보존의 이면에 작동하는 다양한 힘과 관계들을 살피는 일이야말로 『책을 불태우다』를 읽는 독자에게 주어진 또 다른 과제일 것이다.
기왕 분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책과 관련한 중국의 사례 하나를 더 소개하고자 한다. 도가 사상을 대표하는 『장자』라는 책에는 책과 지식을 부정하는 많은 일화가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춘추 시기 제나라 군주인 제환공齊桓公과 윤편輪扁의 일화이다. 이 일화에서 수레바퀴를 만드는 장인 윤편은 제환공이 읽고 있는 책을 조박糟粕, 즉 옛사람이 남긴 ‘찌꺼기’라고 깎아내린다. 그러나 윤편이 비판한 것은 책이나 독서 자체라기보다, 독서가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의 한계라고 볼 수 있다. 책은 어떤 지식이나 정보의 일면만을 전달할 뿐, 그 전체를 포괄하거나 완전히 드러내지는 못한다. 그런 점에서 『장자』의 이 일화는 『책을 불태우다』를 읽을 때도 여전히 유효한 참조가 된다. 매체로서의 책을 보존하는 일이 곧 지식과 정보를 보존하는 일과 동일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늘날 우리가 애써 전하려는 수많은 정보 가운데 상당수는 먼 미래의 인류에게 ‘찌꺼기’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결국 책의 보존은 지식의 질과 양을 모두 아우르는 방향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불과 물을 견뎌내는 책, 오늘날 우리에게 그런 책이 있다면 과연 무슨 책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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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두은
광주에서 중문학을 공부하고 가르친다. 동아시아 고문헌을 통해 옛사람의 사유와 삶의 흔적을 되새기는 한편, 시와 영화에도 관심이 많다. 기록과 기억의 경계를 넘나드는 글쓰기를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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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불태우다 #기록의보존 #디지털아카이빙 #도서관역사 #지식의위계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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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책과참치는 2주 후 목요일 아침에 또 찾아 뵙겠습니다.
디자인 김청아(하마맨션)
콘텐츠랩 책과참치
booksnchamch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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