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책과참치' 독자 서평 공모의 선정 결과를 발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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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책과참치’는 웹을 기반으로 삼아, 새롭고도 대중적인 서평과 독서문화의 플랫폼이 되기 위해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독자 서평’은 그 주요한 내용이자 매개 자체입니다.
하지만 ‘책과 참치’라는 이름이 아직 온 세상 사람들에게 다 알려지지는 않은 형편에서, 또 저희 구독자가 1만 명(?)도 안 되는 형편에서, 독자 서평 공모에 얼마나 많은 분이 호응해주실지 사실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훨씬 많은 글이 왔고(감격 ㅎㅎ) 또 서평 하나하나가 모두 정성스럽게 작성하신 글들이어서 진심으로 고맙고 반가웠습니다.(감동 ㅠㅠ)
저희 ‘책과 참치’ 기획위원들은 그중 총총 님, 이두은 님, 김가은 님이 보내준 세 편을 선정하여 뉴스레터 11호부터 한 편씩 내보내기로 했습니다. 세 분께서는 각각 정말 재치있고 흥미롭게 ‘지정’ 또는 ‘자유’ 도서들이 다룬 명태, 도서관, 페미니즘이라는 주제와 책의 읽을 가치에 대해 말해주었습니다. 서평을 읽으면서 저절로 미소를 지었고 또 많이 배웠습니다. 저희가 그 특징과 미덕에 대해 이곳에서 하나하나 설명하기보다는 구독자들께서 직접 서평을 읽어보시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희는 보내주신 글들을 ‘당선작’과 ‘나머지 낙선작’ 같은 개념으로 치부하지 않으려 합니다. 뉴스레터에 실리지 않는 분들의 글과 그 글에 담은 생각도 무척 소중해서 간직하려 합니다.
응모해주시고 또 응원해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감사드리면서, 제2회 독자 서평 공모도 머지 않아 열린다는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그때도 성원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2025년 7월 24일 책과참치 기획위원 일동.
“책은 인생의 참치다” “책은 육지의 참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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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서평 선정작 ①
『명태 평전』, 명태가 열어주는 시공간 지식의 문
from. 총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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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 덕분에 시작한 책 읽기: 명태의 일생에 대한 책인 줄 알았다
‘명태 평전’이라는 제목과 책 표지를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는 세로로 길쭉한 명태 그림을 보았을 때,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까지 동강 난 명태 토막이나 부침용으로 얇게 저민 명태살, 또는 누런 북어포만 보았지, 온전한 한 마리 명태의 세밀화는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평소 동식물에 관한 글을 좋아해서 이 책 역시 그런 줄로만 알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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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집 부엌에 있는 북어채. 책을 읽기 전까지 내게 익숙했던 명태의 이미지가 북어채였듯이 명태에 대해 알던 지식도 지극히 단편적이었다. 이제는 이 북어채가 왜 원산지는 러시아인데 대관령에서 가공되었다고 포장지에 써 있는지 정도는 안다. (사진은 내가 직접 찍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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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이 책은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명태의 삶보다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동해에서 명태를 잡고 다루고 팔고 먹어온 한반도 사람들의 삶에 대한 어보魚譜였다. 저자 주강현은 해양문명사 연구로 저명한 민속학자로, 1970년대 강원도 고성에서 군 생활을 하며 본 산더미처럼 많이 잡힌 명태들과, 그후 남한에서는 명태가 급격히 사라지면서 원양어업으로 잡힌 북어만 먹다가 2005년 가을 북한 향산호텔에서 먹은 북한산 북어를 떠올리며 “사라져가는 것에 관한 민중 생활사의 기록은 우리 시대에 누군가는 해야 할 의무감 같은 것”이라는 믿음으로 1990년대부터 자료들을 모았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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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부터 『조선수사회보』, 19세기 일본인들의 유리원판 사진, 1950~60년대 사회과학원 민속학 연구실의 북한 어민 구술 자료 등 역사상 현존하는 방대한 자료들을 섭렵했을 뿐만 아니라 1999년부터 2002년까지 함경도 ‘아바이’들을 포함한 동해 강원도 어민들을 대상으로 구술 조사도 했다.
책은 한반도 문헌에 드러난 명태의 첫 궤적을 세심하게 좇으며 시작한다. 선사시대 유적에서 이미 뼈가 발굴된 것으로 유추되고, 16세기 조선시대에 무태어無泰魚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헌에 등장했는지가 논란이 되며, 17세기 함경도 명천의 태씨 성을 가진 어부가 잡았다고 해서 명태로 이름 지어졌다는 설이 유력한, 한반도에서 처음 이름 지어진 바다 물고기. 그후 명태, 북어, 동태 등 다른 식으로 쓰이다가 18세기 어업 발전에 힘입어 19세기 문헌 기록에 보편적으로 언급되었고, 근대에는 43개의 세부 명칭을 가질 정도로 한반도의 식문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시작부터 끝까지 방대한 자료를 엄밀하게 총망라하고 있어서, 이 책 한 권만 읽어도 명태에 관련된 온갖 경제, 문화, 역사, 생태에 대한 정돈된 지식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독자로서는 따라가기 힘든 순간들도 종종 있다. 조선시대 문헌들을 살필 때 나오는 한자어들은 내게 어렵고, 어민들이 구술하는 배의 구조나 어업 도구는 시각 자료 없이 글로만 상상하기에는 버겁다. 숫자가 있는 자료들이 많다보니, 예를 들어 20세기 초반 함경남도 어업조합별 동건명태 제조고製造高 표 같은 것을 볼 때는 조금 지루하다. 생경한 지식을 만났을 때의 심리적 장벽들을 넘기 위해, 이 책을 읽고 싶은 이유를 찾고 되새기며 완독했다. 내게 이 책이 주는 의미는 아래와 같이 추려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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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지식으로 보존하는가? 숨겨지고 사라지는 지식들
첫번째, 『명태 평전』은 지식을 어떻게 정의할 것이며, 내게 쉽게 접근 가능한 지식과 그렇지 않은 지식은 어떻게 나뉘는가 비판적으로 보게 해준다. 이것은 김지원의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에서도 배운 부분인데, 수많은 정보의 나열과 그것을 의미 있게 묶은 지식은 다르다. 그리고 이 책에서 명태를 주제로 선별해서 엮은 지식들은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없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나는 1963년 7월 1일 북한 어랑군 어대진구 26반 ‘김창남’(46세) 어로공의 명태잡이에 대한 지혜(257~258쪽)도, 강릉시 사천면 진리 거주 ‘김화자’(75세)의 식문화에 대한 체험적 역사(347~348쪽)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채록자들이 없었다면 이들의 지식은 사라졌을 것이다. 이와 같은 전통 지식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정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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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지식은 일반적 의미의 전통이 아니라, 이른바 근대과학 체계, 근대 지식, 과학 지식 등과 대척 관계에 있는 정치적 술어이며, 문명인의 지식이 아닌 이른바 야만, 원시, 낙후, 식민 등의 이름으로 내몰린 원주민 지식 체계에 관한 재인식을 뜻한다.
_본문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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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내게 제일 기억에 남은 전통 지식은 ‘살주’이다. 살주란 물빛과 갈매기의 움직임, 멀리 움직이는 바다 표면 등을 보고 고기 떼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차리는 직업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배를 타면서 짬짬이 기술을 전수받은 전문 직업인이었다. 뛰어난 살주는 15리 앞의 명태 떼도 알아봤다고 한다. 그러던 살주들이 다른 전문 선장이나 사공들처럼 설 곳을 잃고 사라지게 된 것은 일본 제국이 어장을 침탈하던 식민지 시기, 첨단 어군 감지기가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일본인 자본가들을 주축으로 첨단 기술과 기선이 등장함에 따라 어부들의 체험적인 민속 지식과 함께 어족 고갈도 빨라졌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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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명태 치어 방류 행사. 『명태 평전』에 따르면, 동해에서 명태가 멸종한 이유와 맥락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치어를 방류하는 바람에 애꿎은 명태 치어들만 뜨거운 바다에서 죽었다고 한다. (출처: 강원특별자치도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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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바라보며 명태 떼를 보고 듣는 살주의 풍경에 나는 매혹되었고, 지금은 사라졌으나 예전에는 분명하게 존재했던 그 직업에 대해 더 찾아보기 위해 인터넷에 검색어를 쳐보았다. 그런데 그 어느 곳에도, 단 한 군데에도 살주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겨우 찾은 것은 ‘살 주住’라는 한자 사전 검색 결과뿐이었다. 그 단어에 얽힌 오랜 민중의 경험과 지혜와 역사들이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주류 세계에서 사라져버린 것 같아 상실감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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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감정에 공간이 미치는 힘: 남한 vs 한반도
두번째, 명태와 명태 어부들이 넘나들던 한반도의 환동해環東海적 공간이, 나도 모르게 내 인식의 기준점이 된 남한의 단절되고 좁은 공간감을 환기시켜주었다. 책의 서문에서 “부산에서 시작해 함경도 온성에 닿고, 두만강을 건너 유라시아대륙으로 연결되는 7번 국도”(8~9쪽)라는 표현을 읽었을 때부터 생경한 감각에 부딪혔다. 우리나라에 유라시아대륙으로 연결되는 국도가 있다는 사실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사실 명태의 본고장이 함경도 신포이다보니, 책 전반에서 함경도 문화와 북한 사회과학원의 자료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우리 역사를 남한으로 축소시키는 내 생각의 벽을 확장한다. 게다가 남북분단 후에도 실제로 명태와 사람들이 문자 그대로 남북의 경계를 넘나들었다는 기록들이 제시된다.
우선 무역 부문에서는 상당량의 북어가 밀무역의 형태를 띠고 분단 초기부터 한국 전쟁 직전까지 삼팔선을 넘나들었다고 한다. 냉장 시설이 없었던 조선시대에는 건조되어 보관이 편리한 북어가 화폐 대용으로 쓰였다고도 했으니, 분단 이후에도 북어의 경제적 공용 가치는 매우 컸던 것 같다. 어업 부문에서는 명태를 둘러싼 바다의 남북 경계가 더욱 흐릿해진다. 명태잡이 어민 대다수가 1968년까지는 명태 떼를 따라 해금강 위의 낙타봉까지 올라갔으며, 그때는 북쪽에서도 눈감아주고 먹을 것도 서로 나누어 주었다고 했다. 때로는 조류의 흐름이 북남에서 남북으로 바뀌면서 뜻하지 않게 순간 월북하는 경우도 허다했는데, 그러다 긴장이 심화되면서 수많은 명태 어민이 납북이 되거나 간첩으로 몰렸다고 했다. 그저 명태를 잡으려던 것뿐인데 보이지 않는 이북 경계선을 넘었다는 이유로 운명이 송두리째 바뀌어버리는 나라라니. 이쯤 되고 보니 오랜 휴전 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의 일상적인 생각과 감정 체계가 분단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을지 사뭇 궁금해졌다. 지금 한국인을 괴롭게 하는 획일화된 잣대와 생존경쟁이, 사실은 세대가 바뀌도록 분단국가에 살면서 정상을 규정하는 선을 넘는 순간 바로 적으로 몰려온 비극의 또다른 표면이 아닐까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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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 쓸모없는 독서의 묘미와 의미
나는 학문을 업으로 삼거나 글밥을 먹는 사람이 아니고 어업과도 거리가 먼 도시 거주자이다. 나 같은 사람이 자기계발서나 직업 관련 서적과 달리 어찌 보면 쓸모없는 『명태 평전』을 완독하고 서평까지 쓰는 것은, 그래서 더 의미 있고 벅차는 경험이었다. 명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지구 온난화를 상징하는 미래까지 톺아보는 과정에서 나와 주변 세계를 이해하는 역사적인 관점이 확 트이는 기분이었다.
내게 드문드문 존재하던 명태와의 교차점들―외할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코다리조림, 엄마가 끓여주시던 동태탕, 유명한 생태탕 맛집에서 이제 생태가 잡히지 않아서 대구탕을 대신 먹어야 했던 허전함, 제사상마다 있는 북어, 술 마신 다음날 꼭 필요하기에 지금도 우리집 부엌에 있는 러시아산/강원도 가공 북어채―이 시간적, 공간적으로 연결되고 깊어진 것 같다. 그 경험이 주는 뿌듯함에 자극받은 지적 호기심은 방사형으로 뻗어나간다. 다음번에는 지식의 계보학, 분단이 한국인의 생각에 미치는 영향, 한반도 민속사, 기후 위기가 해양문화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더 알아가고 싶다.
생계에 쓸모없는 지식이며, 내게 익숙하지 않아 불편하고 어려운 독서라도 좋다. 인터넷에서 범람하는 정보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강요되는 재테크 같은 지식이 아니라, 헤매며 어렵게 터득하기에 내게 소중한 지식의 지도를 그려가는 묘미를 알아버렸으니.
그리고 명태야, 네가 아예 멸종된 것이 아니라 오호츠크해로 이사 가서 다행이다. 우리가 미안해. 뜨거워지는 지구에서 앞으로도 살아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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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총총
미국 병원 정신과에서 사이콜로지스트로 일하며 다양한 인종·문화·연령·정체성·사연을 지닌 분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심리상담에 임할 때 비워야 하는 성취욕구나 자존감을 다른 곳에서 채우기 위해 서평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평생 책 읽는 일, 타인의 삶을 함께 읽는 일을 사랑하는 독자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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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평전 #전통지식 #민중생활사 #명태 #북어 #살주 # #주강헌 #황태 #생태 #동태 #노가리 #코다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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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그릇이 넘칠 때 : 작두에서 AI까지
from. 이우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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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작두—거의 ‘책과 참치’만큼이나 기이해 보이는 조합에서 시작하자. 책을 존중하는 대부분의 선량하고 평범한 사람에게 기요틴처럼 책 위로 떨어지는 작두날의 이미지는 반달리즘의 표상처럼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에 별다른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만화·전공도서 등을 스캔하여 태블릿으로 읽는 학생들에게 소위 ‘스캔방’은 익숙한 장소다.1) 책을 존중하지 않는 ‘요즘 젊은것들~’ 같은 한탄이 나오기 전에 얼른 덧붙이자면, 누구보다 책 수집에 관심이 많은 인문학도 중에도 작두질에 친숙한 이들이 제법 있다. 공간이 없어 이사철마다 번뇌하는 대학원생은 물론, 연구실 장서를 어떻게든 처분해야 하는 퇴직 교수들도 작두로 책을 썰어 스캔하고 버리는, 조금 더 격식 있는 표현으로 ‘디지털화하는’ 과업에 과감히 뛰어들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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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무위키 ‘북스캔’ 항목은 책과 독서, 출판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흥미로울 여러 디테일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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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작두의 친연성은 지식, 정보, 문화, 문자 등등을 비물질적이고 정신적인 실체로 칭송해온 오랜 관습에도 불구하고 그것들 또한 어떤 형태로든 물리적인 크기를 갖는 물질matter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인터넷 서점을 통해 구매한 수천 권의 전자 도서가 해킹 한 번에 무용지물이 되는 상황에서처럼 디지털화된 지식 역시 물질성에서 자유롭지 않다(디지털 자료가 비물질적이라는 오류는 저장 장치에 흠집이 나면 확실하게 치유된다). 앎이 물질적이라는 사실은 그 자체로는 특별하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물질로서의 앎을 담고, 관리하고, 배치하기 위해 필요한 ‘그릇’의 존재다. 지식과 학문의 역사는 인류 문명이 지금까지 다양한 형태의 ‘앎의 그릇’을 만들어왔으며, 그것들이 고유한 역사를 지녔음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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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수집의 역사를 다룬 최고의 책
앤드루 페티그리와 아르트휘르 데르베뒤언이 공저한 『도서관의 역사: 지식을 향한 욕망의 문화사』(아르테, 2025)는 지금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서양 서책사book history·출판사history of publishing 저작 중 단연코 최고의 책이다.2) ‘도서관’이라는 키워드에만 주목하면 놓치기 쉬운데, 이 책의 핵심은 도서를 ‘수집’하는 행위 자체다. 물론 이는 책 수집가들의 기괴하고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을 나열하는 식의 손쉬운 선택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신 저자들은 수집 행위와 연결된 거의 모든 요소가 담긴 거대하고 역동적인 역사를 재구성하는, 오직 해당 주제를 장악한 역사가들에게만 가능한 과업에 뛰어든다. 덕분에 독자들은 제작부터 유통 및 보관 과정, 도서 시장의 작동, 정치와 제도의 영향까지 한 권의 책이 겪게 될 거의 모든 단계를 살펴보고, 도서 제작자, 수집가, 유통업자, 사서, 정책 결정권자 등의 다양한 행위자들이 각각의 과정에 어떠한 역할을 맡았는가를 조망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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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최근에 (역시나 서책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는 반드시 읽을 가치가 있는) 『루터, 브랜드가 되다』 및 『뉴스의 탄생』이 연달아 국역된 페티그리는 근대 초 유럽 서책사 연구의 대가이며, 같이 세인트앤드루스 역사학과의 교수로 재직중인 공저자 데르베뒤언은 그의 지도학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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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의 역사』의 서술은 연대기적 배열을 따른다. 1장에서 아시리아 제국의 점토판 도서관으로부터 개인 서가들이 등장했던 로마 제국까지를 간략하게 살펴본 뒤, 2장은 중세 수도원의 풍경으로 시선을 돌린다. 로마 제국의 몰락은 “지중해 전역의 파피루스 수급 체계가 급속히 무너”지면서 양피지가 책을 위한 새로운 소재로 선택되는 결과를 낳았다(49쪽). 또 그와 함께 두루마리가 아닌 코덱스codex, 즉 종이의 한 면을 꿰매어 책을 만드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방식이 일반화되었다. 중세 수도원은 앎을 수집하고 보존하며 재생산하는 핵심 기지였다—르네상스의 책 사냥꾼들이 자신의 주된 사냥터로 오래된 수도원을 고른 것은 우연이 아니다. 3장은 중세 후기에 대학이 지식 재생산의 중심지로 부상하면서 출판업이 하나의 사업으로 성립하고, 그와 함께 군주·귀족·인문주의자들 사이에 도서 수집가가 등장하는 광경을 그린다.
이야기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는 2부(4~6장)는 인쇄기의 등장 이후의 변화를 흥미로운 디테일을 곁들여 묘사한다. 종교개혁이 초래한 갈등이 인쇄물의 폭증을 낳았음은 분명하지만, 이는 반대로 도서관에는 검열과 분서의 재앙으로 작용했다. 16~17세기 이래 전문가·지식인 집단으로부터 개인 도서 수집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으나, 그렇게 수집된 장서가 세대를 넘어 보전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3부 7~9장). 이는 심지어 대학 도서관에도 해당하는 사실이었으니, 옥스퍼드 보들리 도서관 같은 성공은 예외에 가까웠으며 많은 대학 도서관은 상습적인 도난과 파괴에 취약했다.
4부(10~12장)에서 저자들은 공공도서관, 좀더 정확하게는 공동체 전체를 위한 도서관을 세우고자 하는 시도에 주목한다. 공동체를 위해 장서를 기증하는 이들은 늘어났으나 기증서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시설과 기관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18세기 초 잉글랜드·스코틀랜드에는 독일·네덜란드를 본받아 전국적 도서관 설립 운동을 이끄는 개혁가들이 나타났으나 그 결과물은 성공적으로 안착하지는 못했다(17~18세기 프랑스의 경우, 장대한 도서관을 구축한 재상들은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지식을 전파하는 데는 큰 관심이 없었다). 공공도서관으로 향하는 걸음이 비틀거리는 동안에도 도서 수집 문화는 고도화되어, 17~18세기의 수집가들은 이제 이제까지 별다른 가치를 부여받지 못했던 고서의 수집을 새로운 유행으로 만들었다(12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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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지식과 정보를 처리해온 역사
5부(13~15장)은 18~19세기 유럽 서책사에서 나타나는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따라간다. 독서 대중의 형성은 재미있고 가벼운 읽을거리, 즉 소설 장르와 결부된 하나의 산업이 창출되는 결과를 낳았다. 전통적인 공공도서관이 ‘경박한’ 도서의 비치를 거부하는 동안, 대여도서관·회원제 도서관과 같이 독자들의 요구에 대응하여 소설을 들여놓은 유통기관은 번성할 수 있었다. 대여도서관의 성공은 모두에게 이득이었다. 책을 소장하기 어려운 많은 독자는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책을 읽어볼 수 있었고, 서적상·출판인은 출간 부수를 확보했으며, 소설가는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독서의 대중화에 따라 이제 도서관을 건립하고 운영하는 일은 국가와 사회의 주요한 과업으로 발돋움했다.
19세기 후반 미국의 사업가 앤드루 카네기와 같은 인물은 자신의 재산을 기부하여 각지에 공공도서관을 세우기도 했다. 국가와의 연결이 꼭 바람직한 일은 아니었는데, 세계대전과 함께 많은 도서관은 정치적 프로파간다의 장치로 활용되었으며 그에 따라 군사적 파괴와 약탈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6부 16~18장). 에필로그에서 저자들은 현대의 공공도서관이 직면한 위기를 거론하며 도서관이 공동체의 다양한 필요에 부응하면서도 책과 사서를 중심으로 기존의 사명에 충실한 공간으로 남아 있어야 함을 역설한다.
『도서관의 역사』의 흥미로운 면모 중 하나는 가장 날것의 물질성, 즉 책 자체의 양적 팽창을 끊임없이 의식한다는 점이다. 인쇄기와 함께 출판이 하나의 산업으로 성립하면서 책 또한 본격적으로 증식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책 수집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12세기 유럽에서 가장 풍족했던 클뤼니 수도원의 장서는 570권에 불과했으며, 15세기 중반 피렌체의 지배자 코시모 데 메디치가 후원한 산마르코 성당 도서관이 개관했을 때 장서 수 역시 400권 정도였다. 17세기 네덜란드공화국의 의사·변호사들은 개인당 평균적으로 천 권 정도 규모의 서가를 구축했으며, 18세기에 이르면 만 권 이상을 보유한 장서가가 그리 희귀하지는 않게 되었다.
도서관의 소장 규모 역시 현격히 늘어나서 1990년대 중반 샌프란시스코 공립도서관이 신축 건물로 이전할 때 장서량은 300만 권에 달했다(참고로 현재 서울대학교 도서관은 약 530만 권을 보유중이다).3) 이러한 변화는 도서를 보관하고 전시하는 방식을—16세기에 와서야 궤짝을 대신하여 선반형 책장이 등장했다—포함해 쉽사리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제기했다. 핵심은 무한히 증식하는 책에 비할 때 책을 보관하는 인간의 시간과 공간은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도서관 관리자·행정가 들은 최신 디지털 기술에 기대는 해법에 매료되고는 하지만, 저자들은 여기에 의구심을 품는다. 대신 『도서관의 역사』는 “책이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독자가 좋은 책을 고를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579쪽), 즉 사서의 역할과 기능을 우리가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암시한다. 아마도 ‘책과참치’의 필자들이 서평을 계속해서 쓰는 것 역시 비슷한 마음에서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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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도서관의 역사』 국역본 566쪽은 “로스앤젤레스 도서관”이라 표기하지만, 원저 및 인용 문헌을 참조할 때 저자가 지칭하는 대상은 샌프란시스코 공립도서관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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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은 과연 필요할까?
데니스 덩컨의 『인덱스: 지성사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색인의 역사』(아르테, 2023)는 육중한 『도서관의 역사』에 비한다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소품에 가까워 보인다. 책 곳곳에서 언급되는 유머러스한 사례들, 인터넷 검색 기능의 보편화로 인해—심지어 오늘날 학술출판사들조차 점차 소홀하게 취급하고 있는—‘색인’이라는 사소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주제가 그렇다.4)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는 독자는 곧 저자의 유쾌한 필치 아래에 지식의 물질성에 대한 깊은 성찰이 깃들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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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성정이 급한 독자가 그냥 지나치지 않도록 덧붙이자면, 국역본 447쪽부터 487쪽까지의 두 가지 색인은 그 자체로 곳곳에 저자·색인 작성자의 재치가 흩뿌려진 하나의 즐거운 읽을거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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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덩컨에 따르면 서구의 서책사에서 색인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점은 13세기로, 그 목표는 “독서 과정을 능률화”하고 “책을 사용하는 방식에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함이었다”(94쪽). 이 시기 새롭게 등장한 대학의 교수자 및 탁발 수도회의 수도사들은 각각 강의를 위해, 또 평신도를 대상으로 설교하기 위해 책에서 필요한 부분을 빠르게 찾아낼 수 있어야만 했다. 이는 문헌 내용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배치하는 장치들의 도입으로 이어졌다. 13세기 초 기독교 성경은 장chapter에 따라 체계적으로 분할되었으며, “디스팅티오distinctiones”와 같은 초보적인 형태의 색인이 등장했다(105쪽). 15세기 문헌부터는 쪽 번호가 점차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쪽 번호를 기입한 도서가 보편화하기까지는 인쇄기 도입 이후 한 세기 가까운 시간이 흘러야만 했다. 그와 함께 오늘날과 같이 알파벳 순서를 따른, 쪽 번호가 붙은 색인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흥미롭게도 색인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다. 이미 한번 책을 읽은 사람이 내용의 상기를 위해 색인을 참조하는 일은 문제 될 바가 없었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 색인을 이용하는 게 문제였다. 물론 논문이나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수많은 문헌의 색인을 뒤져본 경험이 있는 독자들은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의아해할 것이다. 근대 초의 문인들이 우려한 바는 색인만 골라 읽은 뒤 자신의 앎을 부풀리는 이들의 등장을, 나아가 색인의 참조가 진지한 독서를 대체해버릴 가능성이었다. 그러한 염려에도 불구하고 색인은 계속해서 작성되었으며, 19세기 후반에 이르면 세상의 모든 유의미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검색할 수 있게 만드는 ‘보편 색인’을 구축하자는 기획이 제안되었다(7장). 놀랍게도 훨씬 제한된 형태이긴 하지만 당대 영어권의 수많은 정기간행물을 대상으로 유사한 작업을 수행한 색인들이 실제로 등장했으며 이는 21세기까지도 계속해서 발간되었다—현대의 보편 색인이라 할 만한 구글 검색은 제외한다고 해도 말이다.
『도서관의 역사』를 폭발적으로 증식하는 책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역사로 읽을 수 있다면, 『인덱스』는 부풀어오르는 지식을 붙들어 그 위에 올라타기 위한 노력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세계에 존재하는 지식의 양이 인간이 물리적으로 읽고 참조할 수 있는 시간을 현저하게 초과하는 현실, 이것이 문제의 근원이다. 색인은 여기에 대응하여 무한한 지식의 지평을 앉은 자리에서 검토할 수 있는 작은 지도로 압축하는 장치의 하나다. 『인덱스』의 미덕 중 하나는 이 장치가 어디까지나 누군가의 노동과 고민, 판단을 거쳐 제작되는 ‘인간 노동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8장에서 컴퓨터를 통한 색인 작업과 구글 검색을 언급하며 본론을 마무리한 뒤, 책의 마지막에 소프트웨어를 통해 자동으로 제작한 색인과 인간 작업자가 작성한 (더 흥미롭고 뛰어난) 주제 색인subject index을 나란히 놓는 구성은 배치가 곧 하나의 설득력 있는 웅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우수한 색인은 우수한 색인 작성자만이 만들 수 있다”(39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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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라는 지식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
대니얼 로젠버그와 앤서니 그래프턴이 공저한 『시간 지도의 탄생: 고대에서 현대까지 연표의 진화와 역사』(현실문화, 2013)는 그 가치에 비해 거의 주목받지 못한 책이다. 부제가 잘 요약하듯 B5 크기에 컬러 도판으로 가득한 이 육중하고 아름다운 책은 서구 출판물의 역사에서 연(대)표timeline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시대별로 보여준다. 저자들, 특히 오늘날 영어권의 가장 영향력 있는 학술사가인 그래프턴의 경력을 아는 독자들은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단순히 흥미로운 연대표를 나열하는 대신 그것들이 당대의 지적·학문적 세계에서 어떠한 과제를 수행하는 도구였는지, 또 그러한 과제에 부합하기 위해 어떠한 형식적 변화가 시도되었는지를 친절하게 짚어주는 것이 이 책의 진가라 할 수 있다.5) 그런 점에서 앞의 두 책과 마찬가지로 『시간 지도의 탄생』 역시 교양 독자와 전문가가 각자의 관심사를 충족시키면서 함께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저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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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앤서니 그래프턴Anthony Grafton의 저작은 나의 다음 서평에서 다룰 예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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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들이 연대표의 기원으로 지목하는 대상은 후기 고대 4세기의 기독교 교부이자 최초의 교회사가인 에우세비우스Eusebius of Caesarea가 작성한 『연대기Chronicon』다. 에우세비우스의 문헌이 꼽힌 까닭은 단지 그것이 오래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여러 왕국·민족·지역의 이질적인 역사 기록들을 기독교적 연대표라는 하나의 ‘시간적’ 형식에 담아내는 모델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서력기원에 따라 세계 각지의 역사를 단일한 세계사로 묶어서 이해하는 데 이미 익숙해져 있지만, 근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지역에 따라 시간과 연대를 기술하는 상이한 기준들이 존재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단적으로 고대의 그리스와 로마는 서로 다른 달력 체계를 채택했으며, 둘의 차이를 조정하는 일은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에게도 쉽지 않은 과제였다). 이처럼 서로 다른 기록을 짜맞추고 이들의 차이를 조정하여 하나의 체계로 시각화하는 것이 에우세비우스의 연대표가 추구한 바였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서구 연대표의 역사는 근본적으로 에우세비우스의 시도를 각각의 목적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시각화하는 시도들의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창세로부터 이어지는 성경적 역사관은 (연도 계산을 둘러싼 논쟁을 제외하면) 큰 잡음 없이 오랫동안 받아들여졌으나, 시간의 흐름과 함께 시각화를 통해 담아내야 하는 대상의 영역이 확장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저자들이 연대표의 역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으로 지목하는 18세기 후반 조지프 프리스틀리의 「전기 차트」(A Chart of Biography, 1765)와 「새로운 역사 차트」(A New Chart of History, 1769)를 보자(146~149쪽). 전자는 정치가·장군, 성직자·형이상학자, 수학자·의사, 예술가·시인, 연설가·비평가, 역사학자·고문헌 연구자·법률가의 여섯 직군을 나누어 주요 인물의 활동 시기를 거대한 연표 위의 선으로 표시했으며, 후자는 유럽 국가들은 물론 중국과 아프리카, 아메리카를 포함한 세계의 각 지역이 시기별로 어떠한 왕국 통치하에 있었는가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주요 인물·사건의 연도를 암기하는 일이 언제나 괴롭고 골치 아픈 과제였음을 고려하면, 이처럼 시공간을 하나의 도표로 압축하는 시도가 문인들과 교육자들에게 각광받았음은 놀랍지 않다. 프리스틀리의 것과 같은 직사각형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연대표는 (심지어 연대표의 형태를 차용한 예술작품을 포함해) 오늘날에까지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방대한 앎의 뭉치를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형태로 압축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연표는 색인과 유사한 면이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연대표는, 적어도 그 정통적인 형태가 재현하고자 하는 대상은 개별 도서나 지식 분야가 아닌 ‘세계의 역사’ 자체라는 사실이다. 물론 세계사를 단 하나의 이미지로 표현하는 과업은 유한한 그릇에 무한을 담아내려는 다른 모든 시도와 마찬가지로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이것이 중세 이래 숱한 연대표 제작자가 시각적 상징물에 이끌린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제작자들이 그 불가능성을 얼마나 인식했느냐와 별개로, 보편사의 연대표는 이질적인 계통에 속한 사실들이 접합되어 하나의 ‘세계사’로 융합되는 기능을 수행했다. 『시간 지도의 역사』의 아름다운 연표들 사이에서 우리는 그 세계사의 매끈한 표면 아래에 그대로 남아 있는 간극을 발견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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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 지식의 그릇이 인간의 물질성을 초과할 때
『도서관의 역사』, 『인덱스』, 『시간 지도의 역사』는 각기 다른 측면에서 책과 지식의 물질성에 접근하지만, 동시에 세 저작은 모두 책 혹은 앎의 양이 인간의 인식 능력을 물리적으로 초과하는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앎의 물질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 정신의 물질성을 함께 보아야 한다. 앎의 그릇이 넘칠 때마다 인간 문명은 더 커다란 도서관의 증축 혹은 디지털화를 통해, 더 정교하고 폭넓은 색인을 구축하여, 혹은 더 창의적이고 압축적인 연표를 제작하여 다시금 앎이라는 거대한 덩어리를 다시금 이해 가능한 영역 내로 붙들고자 노력해왔다. 한 가지 아이러니는 지금까지 인류가 만들어낸 앎의 그릇 중 무한에 가장 근접한 도구, 즉 인공지능이 부상하면서 인간이 스스로의 인식 역량을 훈련할 기회 자체를 박탈당할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이다. 앎의 물질성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실제로는 앎으로부터의 소외를 초래하는 역설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일단은 곁에 놓인 아무 종이책이나 한 권 들고 천천히 읽으면서 생각해보도록 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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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우창
서구 근대와 현대 한국을 지성사 및 젠더사의 관점으로 탐구한다. 책과참치 기획위원 중 가장 먹물스러운 관점을 고수하는 소수파의 역할을 맡기로 했다. 딱 봐도 재미없고 부담스러워 보이는 주제를 잡아 흥미로운 글을 제조하는 목표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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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의역사 #인덱스 #색인의역사 #시간지도의탄생 #연표 #앎의물질성 #지성사 #서책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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