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케티, 샌델, 조돈문: 한 실천적 지식인의 불평등 논쟁 참전기
―from. 조형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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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과 불평등이라는 주제로 한국 사회에 접근하다보면 완전히 상반된 두 가지 견해를 접하게 된다. 한편에서 한국 사회는 갈수록 불평등이 심화되어 지속 가능성이 의심되는 사회로 여겨진다. 대체로 진보주의자들의 견해다. 다른 한편에서 한국은 평등주의 심성이 지배하는 사회로 간주된다. 기업과 부자에 대한 증오심, 시기심이 만연해 있다는 것인데, 보수언론의 온갖 뉴스와 칼럼들이 이런 견해를 유포한다. 사회학자 조돈문에 따르면 이것이야말로 지금 한국 사회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이데올로기 투쟁의 단면이다. 그의 책 『불평등 이데올로기: 수저 계급 사회에 던지는 20가지 질문』(한겨레출판, 2024)은 이 이데올로기 투쟁의 현황을 분석하면서, 스스로 참전을 선언한 실천적 지식인의 노작이다.
책은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한국의 불평등 수준을 통계를 통해 분석하고, 2부에서는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를 분석한다. 3부에서는 근년 불평등 담론의 핵심으로 떠오른 공정성과의 관계를 검토하고, 4부에서는 관련 쟁점들을 인천국제공항 사태 등 사례를 통해 다룬다. 끝으로 5부에서 불평등 사회의 출구를 찾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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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불평등 이데올로기, 현황과 전망
책 속으로 좀더 깊이 들어가보자. 흔히 ‘피케티 지수’라고도 불리는 자산/소득 배율과 펜월드테이블PWT1)의 자본소득 분배율 등을 분석해보면, 한국 사회는 2010년대에 들어 소득 불평등은 그나마 조금 안정된 추세를 보여주지만, 자산 불평등은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즉 “한국 사회는 부의 대물림이 구조화된 ‘수저 계급 사회’가 되었다”(54~56쪽). 서구 4개국과 비교할 때 한국은 불평등이 낮은 스웨덴보다 불평등이 심한 미국에 가깝다(본문 표 1.1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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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enn World Table. 캘리포니아대학교와 흐로닝언대학교의 흐로닝언 성장개발센터가 국가 간 실질 GDP를 측정하고 시간에 따른 변화를 추적하기 위해 개발한 일련의 국민계정 데이터 자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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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1.1.> 소득 집단별 세전 국민소득 점유율(2021년) (『불평등 이데올로기』 본문 4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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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2부라고 생각된다. 스웨덴 사회학자 예란 테르보른의 이데올로기적 호명 과정의 세 가지 양식 구별(“무엇이 존재하는가” “무엇이 정당한가” “무엇이 가능한가”)을 참조하여,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의 양상을 명제화하고 검증한다. 제1명제는 “불평등은 없다”라는 불평등 실태 주장이며, ①불평등 부재, ②있어도 경미, ③심해도 완화 추세라는 세 가지 하위 명제로 구성된다. 제2명제는 “불평등이 있다고 해도 정당하다”인데, 다시 ①불평등 낙수효과, ②불평등 순기능, ③상승 이동 기회 보장이라는 세 가지 하위 명제를 통해 확산된다. 제3명제는 “불평등이 정당화될 수 없다고 해도, 대안적 평등사회는 실현 불가능하다”이며, ①평등사회 대안 부재, ②평등사회 이행 불가라는 두 가지 하위 명제의 확산을 통해 작동한다. 불평등 이데올로기는 이렇게 복잡하고 순차적으로 구성되어 있다(84~87쪽). 이에 맞서는 이데올로기 투쟁이라면 그만큼 정교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 구별에 따라 한국과 서구 4개국(독일·미국·스웨덴·스페인)에 대한 비교가 실행된다. 한국 사회에서 제1명제 세 가지, 제2명제 ①, ②는 수용되지 않는다. 즉 한국인들은 한국 사회가 불평등하다고 생각하고, 불평등이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2명제의 ③, 제3명제의 ①, ②에 대한 태도는 다르다(본문 표 9.1 참조). 모순되고 상충하는 의견들이 뒤엉켜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인은 스웨덴식 다이아몬드형 사회구조(중산층 중심)를 이상적으로 여겨 피라미드형보다 5.5배나 선호하지만, 바람직한 발전 방향으로는 피라미드형이 지배하는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갈수록 선호한다. 한국인들은 불평등이 부당하다고 믿으면서도,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미국식 정책(최저임금 정체, 노조 약화 등)을 지지한다. 상반된 믿음이 뒤얽힌 이 이데올로기적 불안정성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뚜렷한 특징이다. 이 책이 비교사회학적 관점에서 밝혀낸 중요한 성과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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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9.1> 지배계급 이데올로기 명제 검증 결과 (『불평등 이데올로기』 본문 12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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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돈문이 제안하는 해법은 스웨덴 모델로 향한다. 스웨덴은 강력한 노동조합과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의 결합을 통해 불평등 축소의 기반을 구축했고, 나아가 사회적 약자들과의 폭넓은 연대를 이뤄냈다. 평등과 풍요를 동시에 이뤄낸 사례다. 물론 한국과 스웨덴은 많이 다르다. 2023년 기준 스웨덴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67%, 한국은 12.5%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스웨덴도 오늘날의 모델을 만들기까지 100년이 넘게 걸렸다. 조돈문은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주체 형성 전략과, 평등사회를 위한 제도 개혁 전략을 제안한다. 우선 노동조합이 연대 임금 등 보편적 계급 이익을 대변하면서 연대 강화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더불어 보건·의료, 돌봄, 교육, 주거, 사회보험, 저소득층 지원 등 사회정책을 중심으로 한 소득재분배 정책과, 공공성 강화, 기업 지배구조의 민주화, 공동 결정제, 임금노동자 기금 등 자유시장경제 모델을 넘어서는 사회민주주의 모델로의 이행 전략 등 제도 개혁 전략도 병행해야 한다. 이를 묶어 조돈문은 ‘비개혁주의적 개혁’ 전략이라고 부른다. “자본주의 시장 지배 체제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제도 개혁을 추진하되, 개혁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보다 높은 수준의 변혁을 지향”하는 전략이라는 것이다(325~32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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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티·샌델 『기울어진 평등』, 겹치고 갈라지는 논의들
조돈문의 『불평등 이데올로기』가 출간되기 한 달 전인 2024년 5월 20일,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와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이 파리경제대학에서 만나 평등과 불평등을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이 대담은 한국에서는 『기울어진 평등: 부와 권력은 왜 불평등을 허락하는가』(와이즈베리, 2025)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대담은 많은 면에서 조돈문의 논의와 겹치고, 어떤 면에서 갈라진다. 피케티의 주장은 조돈문과 상당히 겹치는 반면, 샌델의 생각은 이들과 긴장을 형성한다. 이것은 꽤 흥미로운 겹침과 갈라짐이다. 조돈문은 불평등 ‘이데올로기’에 천착하지만 그 기반은 피케티처럼 경제적 불평등에서 출발한다. 대안도 사회경제적 측면에 집중된다. 반면 샌델에게서 불평등 이데올로기는 경제적 현실의 반영을 훨씬 넘어서는 독자적이고 복잡한 대상이며 과제다. 이 긴장 속에 오늘날 불평등 문제를 인식하는 작지 않은 차이가 드러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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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티는 불평등의 물질적 기반을 해명하고 극복하는 데 집중한다. 그가 r > g(자본수익률 > 경제성장률) 공식을 통해 자본주의적 불평등의 구조적 메커니즘을 규명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누진적 자본세 강화(최고소득구간 90% 한계세율)와 기업 내 노동자 의결권 50% 확대, 최고임금 제한 같은 경제구조 개혁이 핵심적 과제이며, 교육 기회의 확대, 국제주의의 재건을 통한 글로벌 부유세 등도 대안으로 제시한다.
샌델은 피케티의 분석에 동의하면서도, 여러 지점에서 긴장을 형성하며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에게서 불평등은 무엇보다도 이데올로기의 문제이며, 각각의 정치 공동체에 내재한 도덕적·문화적 차원과 결부되어 있다. 예컨대 그는 더 누진적인 세제를 주장하는 피케티의 견해에 크게 공감하지만, “누진 세제를 지지하는 도덕적·정치적 논거는 강력한 공동체 의식을 배양하고 그에 호소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재분배의 토대는 정체성과 소속감, 일체감, 공동체, 연대의 문제와 떼어놓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100쪽). 그가 현대 불평등 이데올로기의 핵심으로 능력주의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샌델은 평등을 소득과 부의 재분배에 대한 경제적 평등, 발언권과 권력, 참여에 관한 정치적 평등, 존엄성, 지위, 존중, 인정, 명예 등과 관련된 사회적 평등으로 구별하고, 세번째 측면에 논의를 집중한다(145쪽). 공공선에 대한 토론 활성화가 중요한 이유다. 헤지펀드 운용자가 교사나 간호사보다, 심지어 의사보다 5000배를 더 받아야 한다고 공공연히 떠드는 사회에서 소득재분배 논의만으로 노동의 존엄성을 고양할 수는 없다. ‘분배적 정의’를 넘어 어떤 일이 바람직한가를 따지는 ‘기여적 정의’에 대한 논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교육 기회의 확대라는 피케티의 대안은 운과 노력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부족하다. 대입과 선거에서 시민 참여형 추첨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초국적 부유세라는 대안은 인간이 지역적 연대와 애착, 정체성을 통해 묶이는 존재라는 현실을 간과한다. 애국심, 공동체 의식, 소속감 같은 강력한 정치적 정서를 우파에게 뺏겨선 안 된다. 경제적 메커니즘과 도덕적 재설계의 통합이 필수적이며, 이를 통한 사회적 유대감의 회복 없이 불평등 극복은 요원하다는 것이 샌델의 주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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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긴장들, 불가능한 꿈
이들의 겹침과 갈라짐은 불평등 축소와 평등사회로 나아가고자 하는 실천 전략에서 긴장을 반영한다. 이 긴장은 때로 갈등이 되어 부딪힐 것이다. 이주, 이민에 대해 비판적인 ‘반세계화 내지 대안세계화 좌파’의 대두는 대표적이다. 피케티와 샌델의 주장은 재분배 없이는 문화적 변화가 공허하고, 문화적 변화 없이는 재분배도 지속 불가능하다고 종합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 비판과 현실 비판은 상호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 차이, 긴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들은 중요한 출발점 몇 가지를 공유하고 있기도 하다. 첫째, 소위 ‘제3의 길’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그 길은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중도좌파와 노동자계급 사이의 동맹을 파괴한 길이었다. 둘째, 교육·의료·주거 등 기본재의 탈상품화를 불평등 해결의 중요한 선결 조건으로 간주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힘을 모을 수 있다. 셋째, 경제적 격차의 심화가 민주주의의 기반을 침식하는 구조적 위협이라고 경고한다는 점이다. 서구에서 극우가 부상하는 데는 불평등 심화라는 근본 원인이 있다. 힘을 모아야만 한다.
좀더 근본적인 긴장도 남아 있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와 고고학자 데이비드 웬그로는 공저 『모든 것의 새벽』(김영사, 2025)에서 2008년의 금융위기 이래 불평등에 대한 사유와 토론이 붐을 일으키고 있음을 주목한다. 이들의 진단은 이중적이다. 한편으로 불평등에 대한 논의는 “세계 권력구조에 대한 도전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슈 자체가 그 구조로 이득을 얻는 사람들의 입지를 더 공고하게 만든다. “그 문제를 풀어줄 유의미한 해결책이 도저히 발견될 수 없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어중간한 타협을 고무하는 논의들이 대부분이고, 그 결과 ‘불평등’이라는 용어가 기술적 개혁가들의 시대에 알맞게 사회 문제들을 설정하는 방식이 되었다.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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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데이비드 그레이버·데이비드 웬그로, 『모든 것의 새벽: 다시 쓰는 인류 역사』, 김병화 옮김, 김영사, 2025, 16~17쪽. 그레이버와 웬그로는 이런 지적 이후에 “순진하고 평등한 원초적 자연 상태”에 관한 장 자크 루소의 발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한편 샌델과 피케티는 불평등의 기원에 관한 루소의 설명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으로 대담을 마무리한다. 자연 상태에서 평등하던 인간이 이후 불평등해졌다는 명제 자체는 이들에게 유효하다. 반면 그레이버와 웬그로에게는 그런 믿음 자체가 문제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 지면에서의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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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돈문과 피케티, 샌델은 사회민주주의로의 이행이나 참여사회주의의 전망을 제시하는 실천적 개혁가들이지만, 변혁운동을 통한 자본주의와의 근본적 단절을 상상하는 급진 좌파와는 다소 결이 다르기도 하다. 실제로는 이들 정도의 ‘실천적 개혁’조차 금기시되는 시대라고는 해도, ‘실천적 개혁’과 ‘근본적 개혁’ 사이의 긴장도 기록해두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든다. 조돈문의 ‘비개혁주의적 개혁’도 이 점을 의식한 것이리라. 그의 스승 에릭 올린 라이트는 유토피아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생애 마지막까지 “급진 민주평등주의적 대안사회를 위한 경험적·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려 애썼다.3) 멀리 보되 시작은 한 걸음일 수밖에 없다. 한 걸음을 내딛더라도 시선은 지평선 너머를 향해야 한다. 휘청거리는 리얼리스트의 발걸음을 격려하는 건 그가 품은 불가능한 꿈이리라. 그 꿈이 없다면 리얼리스트도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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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에릭 올린 라이트, 『리얼 유토피아: 좋은 사회를 위한 진지한 대화』, 권화현 옮김, 들녘, 2012, 3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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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조형근
동네 사회학자. 파주에서 협동조합 책방 조합원이자 동네 사람으로 살고 있다. 한국 사회의 불평등과 민주주의, 제국과 식민지의 역사가 남긴 흔적과 되살아나는 상처, 지역과 동네의 가능성과 한계 같은 어울리지 않는 주제들을 고민하면서 공부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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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 #불평등 #이데올로기 #수저계급 #조돈문 #토마피케티 #마이클샌델 #기울어진평등 #모든것의새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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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7일부터 시작해 6월 30일까지 진행된 제1회 뉴스레터 책과참치의 서평 공모가 마감되었습니다. 책과 모니터와 메모와 씨름했을, 응모자들의 열의가 쌓여가는 메일로도 감지되었습니다. 책과참치 구독자들과 함께 새로운 서평 쓰기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만 같아 마음이 넉넉해졌습니다. 응모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책과참치는 제1회 서평 공모를 밑천 삼아 '서평'의 새로운 방식과 장을 고민해 다양한 서평 언어가 서식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제2회 서평 공모에도 적극적으로 응해주시기를 부탁드리며, 관련 내용을 곧 공지하도록 하겠습니다. 제1회 응모 선정작은 개별적으로 연락드린 후 뉴스레터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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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공모에 응모하신 모든 분들께 드리는 책과참치 면티. 사이즈는 남녀 각각 한 사이즈. 최고의 귀요미 참치를 만들어보고자 했으나, 참치인지 모르게 되어 버리는 사태가 발생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최종 낙점한 디자인이다. 한편, 동해안에서 대형 참다랑어 1300마리가 잡혔으나, 전량 폐기될 예정이라고 한다. 물론 버려지는 건 아니고 비료로 가공된다고. 참치 먹고 자란 과실을 먹는 셈.
국가별 어종 총허용어획량을 정하는 중서부태평양수산위원회(WCPFC)가 정한 한국 참다랑어 쿼터(한도) 가운데 경북지역 쿼터를 모두 채워서다. 올해 한국 쿼터는 1219t으로, 현재 50%가량 채워진 상태다. 경북에서 영덕과 포항이 배정받은 쿼터는 53t이다.__경향신문, 2025. 7. 8.
한반도 연안 바다도 본격적인 참치의 무대가 된 것만 같다. 그와 동시에 쿼터 확보나 해양수산자원의 유지와 지속, 해양환경과 기후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의 경우 (해양수산부는 한 때 부처를 없앴다가 다시 복원했을 정도로) 해양에 대한 관심이 현저히 낮다. 삼면이 바단데, 부동산만 위력적이다. 더군다나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에 따른 꼴값들을 보고 있으면 기가 찬다!
일단은 면티를 입고 책을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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