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못하는 건 누구인가?
: 위계 없는 읽기의 향연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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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김성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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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속에 우리가 있다
'원어민들은 저렇게 막힘없이 깔끔하게 말하는구나.'
중학교 시절 영어 듣기평가를 처음 접했을 때 들었던 생각이다. 돌아보면 말도 안 되는 착각. 원어민이건 비원어민이건 일상의 발화는 대개 울퉁불퉁하다. ‘um’ ‘like’와 같은 간투사가 계속 나오고, 말을 끊고 다시 시작하기도 한다. 두 사람의 발화는 겹치기 일쑤고, 한 사람이 띄운 문장을 상대가 완성하는 경우도 있다. 듣기평가에서 접했던 건 진짜 말이 아니라 대본의 그럴듯한 낭독, 즉 구어가 아닌 문어의 일종이었던 것이다. 이상화된 언어적 환상을 학습하면서 그것을 날것 그대로의 언어라고 믿었던 시절이었다.
대학에서 언어학개론을 수강했다. 개론이 늘 그렇듯 첫 장은 언어의 본질에 대한 논의. 꿀벌이나 돌고래와 같은 동물의 의사소통 체계는 언어인가 아닌가 하는 논의를 거쳐 인간의 언어는 질적으로 다른 체계라는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인간의 언어가 우월하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지만 사실상 그런 내용이었다. 그러고 보니 식물의 의사소통에 대해 읽어본 기억은 없다. 동물의 소통은 인간보다 열등했고, 식물은 아예 소통 능력이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참으로 ‘자연스러웠다’.
오래전 경험이니 이젠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어 최근에 나온 한 언어학 교과서를 구해 첫 장을 읽어보았다. 동물의 의사소통에 대한 논의는 진일보했지만, 언어는 의사소통과 동의어가 아니며 언어는 인간만의 것이라는 ‘오만한’ 결론에는 변함이 없었다. 식물은 여전히 언어 바깥의 존재였다. 에두아르도 콘의 『숲은 생각한다』나 파코 칼보의 『뇌 없이도 생각할 수 있는가』를 읽으며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숲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서 비인간 존재들과 복합적인 의미망을 형성하며, 식물이 뇌 없이도 다양다종한 정보를 처리하고 소통한다는 과학적ㆍ인문적 주장을 접하고 나니, 언어를 여전히 인간과 일부 동물의 전유물로 여기는 것이 얼마나 편협한지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몇 해 전 학생들에게 "한국의 공용어가 몇 개인지 아느냐"고 물었을 때의 반응이 아직 또렷하다. 모두들 갸우뚱하며 당연히 하나 아니냐는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한국어와 한국수어, 두 개라고 답하자 대부분이 놀라워했다. ‘그래도 언어 교육 전공자들인데…’ 생각이 들었지만 대한민국 언어 교육의 한계를 드러내는 수많은 증상 중 하나일 뿐이었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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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수어가 국어와 함께 공식어로 지정된 것은 2016년 2월 3일 제정된 「한국수화언어법」을 통해서였다. 해당 법률에 따르면 “농인과 한국수어 사용자는 한국수어 사용을 이유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생활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하며, 모든 생활영역에서 한국수어를 통하여 삶을 영위하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지만, 일상의 언어 불평등은 이 법조문을 처참히 배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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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란 무엇인가 묻기 전에 온갖 읽기를 관찰하기
『읽지 못하는 사람들』의 저자이자 퀸메리런던대학교의 현대문학 교수 매슈 루버리는 언어, 그중에서도 ‘읽기’를 의심한다. 근대 이후 확립된 읽기라는 개념에 근원적인 의문을 던지며, “글을 바르게 읽고 이해하는 일”이라는 사전의 정의가 은폐하는 다양다종한 읽기 관행을 드러낸다. 그의 작업은 읽기의 정의에 사용된 단어 하나하나에 물음표를 찍는다. ‘글’은 모두에게 같은 방식으로 지각되는가? ‘바르게’의 기준은 무엇인가? ‘읽기’는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를 가리키는가? ‘이해’의 척도는 누가 정하는가? 읽기를 깊이 이해하려면 단 하나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질문들이다.
이런 질문에 답함에 있어 루버리는 기존의 문해력 연구자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택한다. 읽기의 ‘과학적’ 정의가 아니라 읽는 존재의 다양성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 즉, ‘정상적인 뇌 vs. 비정상적인 뇌’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인간 신경계의 광범위한 스펙트럼을 인정하는 견해에 기반하여 논의를 전개한다. 이는 자폐나 난독증과 같은 특정 증상을 병리학적 결함이 아닌 신경학적 차이, 나아가 다양한 읽기를 가능하게 하는 창조적 조건들로 이해하는 작업으로 나아간다. 결국 그가 추구하는 것은 표준화된 읽기 방식이 배제해온 무수한 텍스트 경험들을 가시화하고, 읽기의 지평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보자. 완벽주의 성향을 가졌던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는 “100권쯤 되는 방대한 저서를 다 읽어야”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었다고 전해지며, 반복적 읽기강박으로 한 구절을 여러 번 읽는 독자도 있다.(32쪽) 투렛 증후군2)을 가진 이들의 일부는 “머릿속으로 문단을 대칭으로 정렬하고, 음절의 균형과 구두점의 비례를 맞추고, 글자가 나타나는 빈도를 확인하고, 단어나 구나 행을 반복해 읽어야 했던 탓에” 독서에 어려움을 겪는다.(31쪽) 이들은 그간 ‘독서장애’를 가진 것으로, 좀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비정상적 독서’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저자는 “잠재적인 강점보다 결함이나 문제를 강조하는 기존 틀을 벗어나기 위해 되도록 읽기장애라는 말 대신 읽기차이라는 말을 사용할 것”이라고 밝힌다.(13쪽) 우리를 ‘위계 없는 읽기의 향연’으로 초대하겠다는 선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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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ourette's syndrome. 틱과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특성화된 신경장애로, 운동 틱과 음성 틱 증상이 모두 나타나면서 유병 기간이 1년 이상일 경우 투렛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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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존재는 다르게 읽는다
다양한 읽기를 횡단하는 여정을 위해 저자는 여섯 개의 테마를 제시한다. 난독증(1장), 자폐증(2장), 실독증(3장), 공감각(4장), 환각(5장), 치매(6장) 등을 겪는 이들이 어떻게 읽는지를 편견 없이 살핀다. ‘장애’를 차이의 관점에서 보자고 제안한 저자는 각각의 키워드에 해당하는 단 하나의 읽기 유형 따위는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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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적 읽기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자폐적 읽기 방식 자체가 하나의 스펙트럼이다. 사진 찍듯 기억하는 것부터 글자 모양을 따라가거나 책 페이지를 팔랑팔랑 넘기는 등 다양하다. 그야말로 자폐인 독자 한 명을 만났다면 자폐인 독자 딱 한 명만 만난 셈이다.
_본문 12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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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비자폐인의 독서를 몇 가지 특성으로 요약할 수 없다면,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의 독서 행위 또한 몇 마디로 기술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위에 열거한 모든 증상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 같은 전제를 바탕으로 다양한 읽기의 풍경을 살펴보자.
난독증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아니 아예 생각조차 못하는 ‘활자 고정성typographical fixity’의 전제가 깨진다는 점이다. 일례로 글자가 뒤집혀 보이거나, 좌우가 반대로 보이거나, 같은 단어를 마주치는데도 때마다 다르게 보인다. 여러 문장의 단어들이 겹쳐 보이거나 고정된 페이지가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처럼 지각되어 한 페이지를 읽는 데 몇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즉 난독증을 겪는 독자는 ‘활자 유동성typographical fluidity’을 시시각각 경험한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독자 일부는 과독過讀 증상을 보인다. 말을 제대로 배우기도 전에 글 읽기를 시작하는 경우도 있고, 성인보다 뛰어난 읽기 능력을 보이기도 한다. 윌리엄 제임스 시디즈는 생후 18개월에 뉴욕 타임스를 읽을 수 있었고, 세 살에는 라틴어를 깨치고 초등학교 입학 당시 8개국어를 읽을 수 있었다. 일정 연령 이전에는 읽기를 배울 수 없다는 발달심리학의 공리를 깨는 사례다. 필자가 흥미롭게 본 특성은 ‘표면 읽기’이다. 이는 “표지, 제본, 종이, 질감, 글꼴, 잉크 등 책의 표면적 특성에 지나치게 집중”(141쪽)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독자가 비자폐인이 놓치는 책의 다양한 측면에 주목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책은 내용을 담는 그릇이기 이전에 그릇 자체이며, 문자의 집합이기 이전에 다양한 물성의 집합체인 것이다!
『읽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외에도 여러 흥미로운 읽기 방식을 전해준다. 공감각3)자는 “글자 E가 ‘맑고 차가운 회청색’”이라고 느끼기도 하고, 심지어 “책을 읽을 때만 색을 지각하는 사람”도 있다.(212쪽) “청각 장애가 있는 사람이 단어를 쓰는 손동작이나 수어에서도 색을 본다는 보고”는 공감각적 읽기가 독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정 폰트에서 색을 더 선명히 느끼는 사례도 있다.(219쪽)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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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공감각은 어떤 하나의 감각이 다른 영역의 감각을 일으키는 일. 또는 그렇게 일으켜진 감각. 소리를 들으면 빛깔이 느껴지는 것 따위이다.
4) 필자 또한 굴림체보다는 맑은고딕으로 된 메시지가 좀더 명확하게 느껴지는 것도 같다. (먼 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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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저자가 일관되게 추적해온 것은 개별 독자들이 텍스트와 관계 맺는 독특한 여정이다. 읽기 개념에 대한 획일화된 정상성의 기준을 해체하고, 보다 생태적이고 포용적인 읽기 이해의 토대를 마련하려 함이다. 에필로그의 제목인 ‘나의 방식으로 읽고 살고 나아갈 것’은 이러한 방향성을 잘 드러난다. 궁극적으로 저자는 자신의 작업이 단순한 사례의 나열을 넘어 읽기 이론을 정립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양한 읽기 양식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모두 고려하면 보편적인 독자라는 잘못된 개념에 기반한 모델보다 더 정확하고 견고하며 분명한 모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34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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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못하는 건 누구인가?
'쉬운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사회적기업 ‘소소한 소통’의 백정연 대표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에 의하면 우리 사회의 정보 전달 방식은 종종 과도하게 전문적이거나 복잡하여 발달장애인, 외국인, 학습장애를 겪는 아동 등 많은 이들을 소외시킨다. 따라서 쉬운 언어와 직관적인 시각 자료를 제공하는 것은 모든 시민의 평등한 권리 보장에 있어 필수적인 과제다.5) 이러한 측면에서 다양한 읽기차이를 가진 이들을 위한 지원 체계가 보다 광범위하고 견고하게 수립될 필요가 있다. 각자의 방식대로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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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는 다른 방향에서의 접근도 가능하다. 읽기차이의 사례들에서 영감을 얻어 전통적인 읽기의 경계를 허물고 확장하는 것이다. 서가를 거닐며 수집한 책 제목들을 엮어 시詩를 짓는 활동을 통해 텍스트를 해체-재조합하는 유희를 즐기거나, 본문을 곧바로 읽기보다 책의 찾아보기(인덱스)를 먼저 살피며 책의 목차와 구조, 주제를 상상해볼 수 있다. 1독에서는 개념어에, 2독에서는 인물에, 3독에서는 숫자와 연도에 주의를 기울이며 독서의 초점을 바꿀 수도 있다. ‘에라 모르겠다!’ 하며 찾던 책의 호위무사처럼 곁을 지키는 책들까지 훑어보다가 뜻밖의 재미를 덤으로 맛보는 것은 어떨까. 이와 같은 ‘엉뚱한 읽기’는 그간 간과했던 독서의 잠재성을 일깨워줄지도 모른다.
작가는 '나는 독서가 어렵고, 하려고 해도 잘 안 돼'라며 좌절하는 이들에게 “괴로워하지마.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읽기 스펙트럼 위에 있을 뿐이야”라고 말하는 듯하다. 누군가는 소리내어 읽고, 누군가는 손가락을 따라가며 읽고, 누군가는 낙서를 하며 읽는다. 밤을 새서라도 한 권을 온전히 읽어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도, 화장실에 갈 때마다 야금야금 읽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종이책의 물성과 읽기를 분리할 수 없다 여기고, 어떤 이는 취침 전 어두운 고요 속 전자책 독서의 시간을 사랑한다. 읽자마자 까먹는 것도 읽기이고, 한 구절을 화두 삼아 한 달을 곱씹는 것도 읽기다. 이 모든 것이 '정상'이며 더 낫거나 못한 것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베스트셀러이니 읽어야 한다는 강박, 완독이 아니면 독서가 아니라는 완벽주의, 어려운 책을 읽어야만 교양이 쌓인다는 선입견 따위는 던져버리고,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책, 가장 편안하게 텍스트와 마주할 수 있는 시공간과 관계를 탐색해보는 건 어떨까. 우리의 '어리숙한 읽기'는 그저 '다르게 읽기'일 뿐이다. 거기에서 시작하면 된다. 하지만 안주하지는 말자. 읽기라는 대양을 가로지르는 항해로는 무궁무진하니까.
매슈 루버리 책의 원제는 ‘Reader's Block: A History of Reading Differences’, 직역하면 ‘독자의 장벽: 읽기차이의 역사’인데 한국어판 제목은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한글 제목은 두 가지 상반된 의미를 품고 있는 듯하다. 먼저 전형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비정상적 읽기’로 치부되었던 다양한 독서에 대해 여전한 선입견을 나타내는 제목으로 볼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난독증, 자폐 스펙트럼, 실독증 등을 가진 이들은 제대로 읽지 못한다. 하지만 반대의 해석도 가능하다. 여태껏 존재의 다양성이 빚어내는 개성 가득한 읽기에 무지했던 대다수 독자야말로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해석 말이다. 그래서일까. 책을 덮고 나니 나는 글만 읽었지 세상은 읽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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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성우
리터러시 연구자이자 캣츠랩 연구위원으로 대학 안팎에서 배움을 매개로 연결되는 삶을 산다.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쓰기를 어떻게 바꿀까』 『영어의 마음을 읽는 법』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공저) 등을 썼다. ‘삶과 행성을 위한 리터러시’를 화두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으며 산책길에 만나는 고양이와 오리, 스러지는 해질녘 하늘에 자주 마음을 빼앗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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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못하는사람들 #실독증 #난독증 #자폐스펙트럼 #읽기 #독서 #책읽기 #언어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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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모이고 함께 읽자*
: 윤퇴청과 함께한 탄핵 광장에서의 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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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정고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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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25년 5월 27일 화요일 ‘윤퇴청(윤석열 퇴진을 위해 행동하는 청년들, 현재 ‘광장을 잇는 윤퇴청’)’ 김철규 활동가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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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글이 발행되는 때는 대선이 끝난 후일 것이고, 각자 작년 12월부터의 광장을 돌아보며 선거 결과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있을 테다. 계엄 이후 새로이 알게 된 수많은 해로운 인물들의 이름과 얼굴을 평생 각인한 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번 광장을 거치며 각자의 분야에서 성실하고 단단하게 활동해온 사회운동 단체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세대 활동가들의 이름과 얼굴(가령 윤석열 탄핵 집회 사회자로 이름을 떨친 박민주‧김형남 활동가처럼)을 알게 된 것은 내게 커다란 수확이었다. ‘윤퇴청’도 그중 하나다. 인간 근조화환, N행시, 멍냥이가 등장하는 농성장 포스터 등 이들의 ‘기깔나는’ 활동들을 지켜보다가, 이재정 윤퇴청 대표 이름을 딴 3행시 ‘이-제는/재-정이/정-말 비상입니다’를 보고 깔깔 웃으며 ‘카뱅 심규협’에도 윤퇴청에도 후원금을 보냈었다. 혼란하고 피곤한 내란 이후의 세상에서 나를 웃게 하는 조직의 등장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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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규 활동가를 처음 만나 이 말을 건넸을 때, “사실 비장하고 위험한 상황에서 너무 엄숙하기보다는 어떻게 재미있고 안전하게 활동을 꾸려나갈 수 있을까를 고민한 결과인데 너무 잘 알아줘서 고맙다”는 답이 돌아왔다. 작년 12월 3일, 세미나를 하던 중 계엄 소식을 듣고 동료들과 함께 국회 앞으로 달려간 청년들은 다음날 새벽부터 윤석열 탄핵을 요구하는 웹자보와 현수막을 제작하고, 30~40명의 시민과 함께 국회 정문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계엄 전 ‘청년 일동’이라는 다소 모호한 이름을 내걸고 활동했던 이들은, 이후 조직적인 활동을 위해 ‘윤퇴청’을 결성한다.
지역 정당 활동을 해오던 김철규 활동가는, 윤퇴청을 만들면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비롯한 다양성 문제, ‘젠더’와 ‘평등’을 더욱 적극적으로 외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기성 정치의 틀이 아닌 청년들끼리의 ‘으쌰으쌰’의 결과물 중 하나가 바로, 이번 인터뷰의 주제이기도 한 ‘윤퇴청 철야농성 맞이 긴급번개: 민주주의 읽으며, 민주주의 지키자’였다.
긴급번개가 열린 날은 3월 8일 여성의날 행사가 광화문에서 펼쳐지고 동시에 윤석열 ‘석방’이 이루어진 다음날이었다. 우리는 윤퇴청의 농성장 독서 프로그램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1980, 90년대 인문사회과학 서점들이 지식을 나누고 토론할 수 있는 매개체였던 것을 떠올렸다(광화문 텐트 이웃으로는 ‘무지개 서점’도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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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태프도 없고 그러니까 약간 정돈이 안 된 상태였는데, 저희가 거의 처음 농성장 프로그램을 꾸려서 했었죠. 그때는 비상행동 센터만 달랑 있고 텐트도 다 펼쳐지기 전인데, 그런 상황에서 책 읽기를 한 건 밤을 새우면서 농성장을 지켜야 할 것 같은데 시민들이랑 안전하고 재밌게 네트워킹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하다가 딱 생각나서 한 거예요. 그래 갖고 그냥 일단 책 읽자, 그래 괜찮다, 좋다, 그래서 그날 옆에 있는 카페 가서 포스터 만들고 올려서 급히 [번개]했던 거거든요. 시민들이 뒤숭숭할 거고 여러 가지 고민이 있을 텐데 책 이야기를 나누면서 고민도 나누고, 우리끼리 농성장 지키면서 재미있게 해보자. 이런 취지로 일단 시작했던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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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웠던 건 민주주의와 관련된 서적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겹치는 책이 한 권도 없었어요. 겹치는 책이 한 권은 있을 만하잖아요? 각자 생각하는 문제의식과 그 농도는 모두 다르구나, 저는 그게 굉장히 건강한 민주주의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엘리트 포획: 엘리트는 어떻게 정체성 정치를 (그리고 모든 것을) 포획하는가?』 『내전, 대중 혐오, 법치: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도플갱어: 우파라는 거울 이미지를 마주한 미국 좌파의 딜레마』 『오웰의 장미: 위기의 시대에 기쁨으로 저항하는 법』 등, 참여자들이 선택한 책은 최근 한국 사회와 운동 사회 전반에 대두한 주요 문제의식을 반영한다. 김철규 활동가는 2016~17년의 광장과 이번 광장이 구별되는 핵심적인 요소는 바로 시민 자유발언에서 터져나온 ‘정체성’ 말하기였으며, 그렇기에 퀴어-페미니스트의 목소리를 앞으로 펼쳐질 정치의 시간에 어떻게 기입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엘리트 포획』을 읽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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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샘 농성이 힘들까 싶어 기타를 챙겨 갔지만 연주할 틈은 없었고, 아쉬운 마음에 다음날 아침 경복궁 담장 앞에 털썩 주저앉아 기타를 들고 <바위처럼>을 불렀다고도 했다. “독서 모임을 통해 글과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보낸 뒤라서일까요. 그날따라 가사가 새삼 다르게, 더 깊게 들리더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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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처럼 살아가보자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 마침내 올 해방세상 주춧돌이 될
바위처럼 살자꾸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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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석방 이후를 돌아보면, 그 당시의 감정과 상황에 이 노래가 너무도 잘 맞아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독서가 주는 사유의 힘이랄까. 글을 통해, 말과 문장을 통해 감각이 열리고 세상을 다르게 듣고 보는 경험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이후 농성장에서 민중가요 배우기 프로그램을 진행했을 때, 한 참가자가 “이렇게 들으니 가사가 참 슬프네요”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단순히 노래를 듣는 것이 아니라, 마치 글을 읽듯 음악을 듣고, 다시 세상을 느끼는 일이 가능하구나 싶었습니다.” 그는 독서를 “세상을 향한 오감을 확장하는 일”이라고 말하면서, 이어진 광장 프로그램에서 느낄 수 있었던 모든 감각이, 독서 번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탄핵 광장에서 책 읽기’의 연장선상에서 김철규 활동가에게 선거 결과로 환원되지 않는 ‘사회대개혁’을 꿈꾸는 사람들, ‘나중에’가 아닌 지금 당장 현실을 실질적으로 바꿔나가기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을 물었다. 그는 주저 없이 김진숙 지도위원의 『소금꽃나무』를 꼽았고, 나는 이마를 퍽퍽 칠 수밖에 없었다(긍정의 의미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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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딱 생각나는 게 있어요. 김진숙 지도의 『소금꽃나무』. 제가 스무 살 때 그 책을 읽었거든요. 김진숙 지도의 투쟁과 이 책이 제 인생에 되게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그분의 슬로건이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이잖아요. 전에도 사람들과 이게 우리의 신조다,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윤퇴청)는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할 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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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수업에서 문학 교양을 가르치는 나는 수업 시간에 『전태일 평전』과 『소금꽃나무』의 일부를 학생들에게 읽게 한다. 그런데 작년에 수업을 들었던 한 학생이 대통령 파면 이후 연락을 해왔다. 집회 무대에서 발언하는 김진숙 지도위원을 보며, 또 『전태일 평전』을 읽고 사법시험을 준비할 힘을 얻었다는 정계선 헌법재판관을 보며 우리의 수업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사실 『소금꽃나무』에도 김진숙 지도위원이 『전태일 평전』을 처음 읽게 되었던 순간이 강렬하게 묘사되어 있다. 야학에서 만난 한 강학이 건넨 “푸르딩딩한 책 색깔도 그렇고 어떤 아줌마가 가슴에 뭔가를 끌어안고 주저앉아 우는 것도 궁상스럽고, 무엇보다 제목에 ‘노동자’라는 말이 마음에 안 들어 받아다 놓고는 펴보지도 않은 채 먼지만 앉히고” 있던 『전태일 평전』을 읽으며, 그녀는 꺼이꺼이 울었다고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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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뭘까. 그의 삶에 비한다면 내 삶은 뭘까. 똥구덩이 같은 현장에서 혼자 비단신을 신고 내내 똥을 탈탈 털고 있었던 넌 뭐냐. 시집을 끼고 다니며 니체도 모르는 아저씨들을 비웃으며 그들과 나는 다르다고 끊임없이 주문을 외우던 넌 누구냐. ‘노동자’란 말에 멸시를 보내며 ‘회사원’이라는 자만의 웃음을 질질 흘리던 넌 도대체…
_김진숙, 『소금꽃나무』, 후마니타스, 2011, 4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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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독서의 힘은 바로 이런 ‘이어짐’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인터뷰 말미, 관련하여 김철규 활동가는 ‘함께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분노로 책 사기→집회 나가느라 책 못 읽기→집중력 저하로 인한 병렬 독서→분노로 또 책 사기→…의 무한 루프에 갇힌, 그래서 출판사만 기쁘게(?) 하는 우리 두 사람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독자들이 있다면, 가장 돈이 덜 드는(!) 모임인 독서 모임을 소소하게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모여서 함께 읽으며 스스로가 어떤 구조 속에 놓여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그럼으로써 우리의 비판적 의식이 높아진다면 ‘사회대개혁’의 밑거름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그가 했던 ‘자주 많이 모이고 함께 읽자’는 말을 곱씹게 되었다. 광장에서 공명했던 서로의 마음을 이어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웃으면서_끝까지_함께_투쟁(독서)을 외치면서, 책장에 묵혀둔 책 한 권을 집어들어보자.
추신: 윤퇴청의 귀엽고 아름다운 포스터 제작 ‘전권全權’을 가지고 있는 김철규 활동가, 민족문제연구소·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주관하는 ‘민주주의와 깃발’ 전시(2025년 8월 17일까지)의 공간 기획에도 참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X에서는 윤석열 탄핵 집회 내내 화제가 되었던 ‘[내향인] 깃발’이 전시 건물 외벽 한쪽 구석에, 고양이 깃발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전시의 몇 가지 관람 포인트를 물어보았다. “광장을 상징하는, 그리고 연대를 상징하는 게 뭘까, 무지개인 것 같다”는 아이디어에서, 외벽을 둘러싼 깃발이 무지개 톤으로 배치되었다고 한다. 또 내부의 연대투쟁 섹션 역시 어둡다가 점점 밝아지는 무지개 톤으로 배치되어 있다. 여기까지는 다들 아시는 내용이겠지만! 대선 기간 중 선보이지 못한 전시품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제는 당당히 전시되고 있을 터이다. 이미 방문하신 책과참치 구독자분들은 N차 관람을 위해 재방문해도 좋을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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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고은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선임연구원. 2024년 「신자유주의 시대의 노동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노동과 ‘페미니즘’에 관한 글을 쓴다. 내란 이후 계속된 과로로 병렬 독서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
김철규 ‘광장을 잇는 윤퇴청’ 활동가, ‘불평등 물어가는 범청년행동’ 운영위원. 이례적으로 운동권이 총학생회를 ‘집권’했던 때에 대학에 입학했지만, 운동권이 되기 싫어 선배들을 피해 다녔다. 그러나 20대 후반이 된 지금, 동기 중 거의 마지막 남은 ‘데모꾼 활동가’가 되어버린 아이러니 속에 살고 있다. 대학에서는 정치학과 디자인을 함께 공부했다. 차별과 혐오가 정치가 되지 않는 세상, 누구도 비참해지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그 꿈을 향해, 광장과 닮은 정치를 만들기 위한 길을 오늘도 웃으며, 끝까지 걸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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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샘농성 #민주주의 #활동가의_책 #웃으면서_끝까지_함께_투쟁(독서) #윤퇴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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